등록 : 2017.07.20 18:14
수정 : 2017.07.20 20:39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해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다룬 영화 <박열>과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탈출기를 그린 <군함도>가 올여름 영화계 가장 큰 이슈인 듯싶다. 마침 연극계에서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두 작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 대학로 30스튜디오에서 공연 중인 연극 <해방의 서울>과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1945>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다 1945년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시대는 같으나, 공간은 다르다. <해방의 서울>은 경성을, <1945>는 만주를 배경으로 한다.
박근형이 쓰고 연출한 극단 골목길의 <해방의 서울>부터 소개하면 이렇다. 작품은 1945년 8월15일 오전 한나절의 이야기다. 극 중 공간은 창경원, 지금의 창경궁 후원에 있는 춘당지이다. 등장인물은 영화배우들과 스태프, 제작자 등이다. 그들이 찍는 영화는 ‘사쿠라는 피었는데’라는 제목의 문예영화다. 아비가 자식에게 전장에 나가라고 명하는 대사로 미루어 보아, 영화는 조선의 청년들에게 태평양전쟁 지원을 장려하는 선전영화인 듯싶다. 연극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촬영을 앞두고 일어나는 일대 소동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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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해방의 서울>. 극단 골목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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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 대한 견해 차이로 배우와 감독 사이에 실랑이가 일어나 촬영이 지연되는 가운데, 방금 일본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영화제작자가 촬영 현장에 도착한다. 그는 영화가 경성과 도쿄에서 동시 개봉될 거란 소식을 전한다. 이를 발판으로 만주에서 차기작을 촬영할 계획이라는 소식에 배우들은 다들 환호하며 기쁨의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감독이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한다. 후임 감독 자리를 두고 작은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하나, 이내 갈등이 봉합되고 영화는 차질 없이 마무리되는 듯하다. 하지만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전해진다. 그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배삼식 작가가 쓴 국립극단의 연극 <1945>는 바로 그 시점에서 시작한다. 작품은 만주로 타향살이를 갔던 사람들이 조선의 해방 소식을 듣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귀환기다. 배경은 만주 장춘에 실재했던 조선인 전재민(戰災民) 구제소. 피난민들이 기차를 기다리던 곳이다. 연극은 그곳에 모인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면을 보인다. 주요인물은 조선인 위안부 명숙과 일본인 위안부 미즈코. 신분을 숨기고 피난민 대열에 섞여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그들은, 그러나 승차 전날 정체를 들키게 된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것도 조선인들에게 악행을 저지른 일본인과 함께 기차를 탈 수는 없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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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1945>. 국립극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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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명숙에게 연정을 느끼던 남자가 나서서 그녀들을 변호하며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그녀들은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저 여자들을 다시 진창 속에 밀어 넣고 가자고요? 우리가 씻어줘야죠. 그 고통을. 지옥에서 건져내야죠”라고 한다. 이때 명숙이 나서서 자신을 변호하는 남자에게 “씻어 줘? 우리가 더럽다고”라며 쏘아붙인다. 덧붙이는 말에서 명숙은 자신은 떳떳하며, 어떤 지옥도 자신들을 더럽히지는 못했다고, 오히려 더러운 건 자신들을 더럽게 보는 그들의 눈이라고 일갈한다. 명숙과 미즈코는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영화 <박열>과 <군함도>와 연극 <해방의 서울>과 <1945>는 어쩌면 반대의 지점에 놓인 듯 보인다. 극단적으로 비유하면, 영화가 일제에 맞서 저항했던 의인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면, 연극은 시대에 휩쓸려 표류했던 소시민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셈이다. 물론 <해방의 서울>과 <1945>의 인물 사이에도 거리는 존재한다. 그럼에도 흑백으로 구분하자면, 연극 속 인물들은 흑에 가깝다. 모두의 얼굴엔 옅건 짙건 검댕이 묻어 있다. 얼룩지지 않은 생이 있겠는가. 때 묻지 않은 백의 인생도, 숯처럼 검은 흑의 인생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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