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27 18:26
수정 : 2017.07.27 20:34
박보나
미술가
학부 시절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갔다가 어이없이 강도를 당한 적이 있다. 다행히 용의자가 붙잡혀서, 재판에 나가 범죄 당시를 증언하게 되었다. 강도가 흑인이었다는 내 증언에, 용의자 쪽 변호사가 ‘어떤 피부색의 흑인이었나요?’라고 물었고, 난 당황해서 ‘그냥 흑인’이라고 대답했다. 흑인이라는 표현이 이미 특정 피부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피부색이냐고 또 질문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변호사는 흑인에게도 커피 갈색, 옅은 갈색, 진한 검은색, 푸른 검은색, 회색에 가까운 검은색 등 다양한 피부색이 있다고 말하면서, 한국에서 온 내가 흑인에 대해 너무 무지하기 때문에 내 증언이 유효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변호사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은 내게 매우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사람의 피부색은 각기 다르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한심했고, 흑인은 다 그저 검다고만 생각했던 편견 어린 나의 무식함이 창피했다. 바이런 김이 1991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제유법>은 항상 나에게 이 부끄러운 순간을 선명하게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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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 김, <제유법>. 판에 유화 및 왁스, 각 25.4×20.32㎝, 1991~현재. 미국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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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바이런 김은 단색 회화를 그린다. 하늘빛을 캔버스에 옮기기도 하고, 고려청자의 유약의 푸르름을 담아내기도 한다. 바이런 김의 그림은 추상화의 서정적인 시각적 구현을 넘어서, 인종과 문화적 정체성 및 존재론에 대한 탐구로 확장된다. <제유법>은 25.4×20.32㎝ 사이즈의 판 수백 개로 구성된 회화 설치 작업이다. 하나의 판이 한 가지 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모든 판의 색이 조금씩 다르다. 이 색은 작가가 주변 지인들이나 낯선 사람들을 모델로, 이들의 피부색을 재현한 것이다. 이 작업을 처음 봤을 때, 판들의 색이 너무 다양해서 사람의 피부색이라고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푸른 회색이나, 분홍색에 가까운 색도 있었는데, ‘살색’으로 보기에 나에게는 여전히 낯선 색감들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타인에 대해 무지한지를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작가는 이 수백 개의 직사각형 판을 나란히 배치해 하나의 큰 사각형을 만든다. 모델들의 이름 알파벳 순서에 따랐다는 이 배열은 꽤 공평해 보인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구도적 구성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중요하고, 하나하나가 중심이 된다. 부분으로 전체를 표현하는 수사법인 ‘제유법’으로 붙여진 작업의 제목은, 피부색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각각 다른 개인이 중심이 되어 한 사회를 구성한다는 관계적 차원의 의미를 함축한다.
바이런 김의 그림에서 보듯이, 그냥 모두 같은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각각의 색이 있다. 그게 빨간색이든, 초록색이든, 무지개색이든 간에, 그 색은 한 사람을 구성하는 중요한 정체성이고, 그 사람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소중한 일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다르다는 점은 어색할지언정, 배척과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이렇게나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다. 특히, 서로에 대해 대화와 경험이 부족할 때, 이해의 과정은 더욱 험난해진다. 그래서 새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에서 사회적 논쟁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을 제외시킨 것이 몹시 아쉽다. 다양성은 건강한 사회의 당연한 구성 요소인 만큼, 다름은 존중받아야 하고, 차별은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 성적 지향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사회적 논쟁은 더 많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필요하고, 더 중요하다.
다정한 나의 조카가 유치원 원가를 부를 때, 내가 싫어한다고 생략하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키도 같고 마음도 같은 친구들’이라는 가사이다. 모두가 똑같다는 생각은 조금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잘못된 구실이 된다. 세상에는 ‘그냥 흑인’은 없다. 존중받아야 할 다양한 개개의 인격체들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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