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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3 18:15 수정 : 2017.08.03 20:45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9월에 떠나는 <한겨레> 음악기행에 동행인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음악적 가이드를 도맡아 공연을 선별하고 해설하며 여행객의 이해를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애초엔 스위스 루체른 음악축제를 탐방할 계획이었다. 홈페이지를 헤집어 루체른의 공연정보를 줄줄이 꿰어가고 있을 때 주최 측으로부터 돌연 새로운 제안을 받았다. 9월에 열리는 ‘베를린 음악축제’에서 윤이상의 음악이 집중 조명되는데, 특별히 경기필하모닉도 초청받아 연주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윤이상 선생이 생전에 머물며 수많은 곡을 작곡했던 ‘베를린 하우스’가 재도약을 준비 중이라 했다. 그러니 루체른이 아니라 베를린으로 음악기행을 선회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런 제안이었다. 머리를 싸매 애써 파악한 루체른의 공연이 아깝기도 했지만, 9월이면 학기 중이라 동뜨기 힘든 일정이었다. 그래서 단박에 거절했었다.

윤이상평화재단은 스토리펀딩을 통해 윤이상이 활약한 ‘베를린 하우스’의 재탄생을 도모하고 있다. 스토리펀딩 화면 갈무리
루체른 페스티벌의 매혹적인 공연들에 애착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한편으론 죄책감 같은 것이 스멀거렸다. 떨쳐낼 겸 음악을 듣기로 했다. 빽빽이 꽂힌 시디(CD) 사이 눈길이 툭 머문 곳은 하필 윤이상의 음반이었다. 그래, 복잡 난해한 음악을 들으면 잡념이 사라질지 몰라. ‘피리’(Piri)란 곡을 꺼내들었다. 클라리넷을 국악기인 피리처럼 다루며 윤이상 특유의 동양적 세계관이 서양기법 안에 녹아 있는 곡이었다. 살아 움직이는 개별음은 음을 고정된 채로 두지 않는다. 화선지에 스민 붓글씨 먹빛의 흔적처럼 음들은 궤적을 그리며 살아 흐른다. 음악을 들을수록 머리는 애써 거부하는데도 귀와 마음이 속절없이 빠져들었다. 루체른은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윤이상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베를린의 가을은 올해가 아니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었다. 조심스레 일터의 수장께 학기 중 외유가 가능한지 문의했다. 걱정과 달리 휴강과 보강절차를 상세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용기백배해 다시 거절을 거두며 <한겨레>에 전했다. 이번 기행은 윤이상을 만나러 베를린으로 가겠다고.

베를린의 음악지도를 펼쳐 들고 9월의 공연을 꼼꼼히 일별했다. 음악기행을 떠나는 9월14일부터 21일까지 마침 5개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연이어 무대에 올랐다. 한국의 문화사절로 베를린 음악축제에 초청받은 경기필하모닉을 비롯해, 명실공히 음악 강국인 독일을 대표하는 4개의 오케스트라-베를린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도이체 오퍼 베를린-의 다채로운 공연으로 음악적 동선을 엮어냈다. 베토벤과 브람스, 바그너와 브루크너 등 교향곡의 역사에 일가를 이룬 거장들과 함께, 윤이상의 작품들도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뜻깊은 음악적 여정이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

음악기행의 동선은 공연장뿐만 아니라 베를린 곳곳에 산재된 윤이상 삶의 궤적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윤이상은 줄곧 ‘다층적 분단’을 감내해야 했다. 분단국 한국에서 태어나 분단도시 베를린에서 활동하며 동양/서양, 남한/북한, 예술/정치 등 여러 경계를 온몸으로 부대꼈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생가와 묘소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런데 만년의 삶을 의탁하며 수많은 곡을 작곡했던 베를린의 클라도 자택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형편이다. 한반도 모양으로 손수 만들어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던 작은 연못은 현재 수풀만 무성하다. 작업실 겸 연주 공간으로 활용되며 그의 숨결이 깃들었던 주택 역시 마룻바닥이 균열되어 울퉁불퉁 일어날 정도로 재건이 시급하다. 폐가와 같은 그곳을 여행 일정에 포함하면 실망하지 않겠냐는 누군가의 우려에 ‘있는 그대로 목도하고 또 다른 성찰을 이끌어내길 바란다’고 대답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편, 윤이상평화재단은 스토리펀딩 ‘한국이 외면한 천재 작곡가 윤이상’을 통해 베를린 하우스의 재탄생을 도모하고 있다.(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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