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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4 18:42 수정 : 2017.08.24 20:34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돌마고 불금파티>가 오늘(25일) 저녁 7시 청계광장에서 열린다. 돌마고는 ‘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을 의미한다.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건 이 시민행동 문화제는 매주 금요일마다 <문화방송>(MBC)과 <한국방송>(KBS) 방송국 앞을 번갈아 돌아가며 개최되었다. 처참히 망가진 공영방송 혹은 부당해고와 징계로 고통받는 언론인들의 현주소를 각성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지만, 이들은 비장한 데모 대신 흥겨운 파티를 선택했다. 시원한 탄산수를 마시며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 거리로 들썩거린 문화제를 펼쳐온 것이다. 방송인들의 결집에 집중하던 이 파티가 오늘은 드디어 중앙의 광장으로 진출한다. 시민들에게 다가가 연대의 손을 내민다.

영화 <공범자들>을 연거푸 2번 감상했다. 가장 이른 조조시간인데도 객석이 꽉 찬데다 20대 청년뿐 아니라 희끗희끗한 노년이 관객의 대다수를 차지해 의외였다. 마음을 흔들었던 장면을 기억에 튼튼히 새기고 싶어 이튿날 심야상영으로 한 번 더 감상했다. 이번에도 객석이 꽉 들어차 있었다. 이틀째라 면역이 생겼을 법한데도 여전히 감정의 동요가 일었다. 직장인이 대다수일 듯한 주변의 관객들도 같은 탄식을 뱉으며 몰입을 더했다.

영화에선 여러 해직 언론인들이 주연으로 등장한다. 파업의 이유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답한다. “일손을 놓는다는 것은 하다 하다 마지막에 몰린 저항이다. 거래가 아니니 담보도 없다.” 싸움의 의미를 묻자 이런 대답도 들려준다. “청춘과 인생을 다 날렸지만 최소한 우리는 기록을 남겼다. 암흑의 시기에 적어도 침묵하지 않았다.” 오늘 누가 쫓겨나고 내일 누가 배제될지 몰랐던 9년이라 했다. 해고와 정직, 부당전보가 남발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도 그들은 저항의 날을 벼렸고 야만을 폭로하기 위해 서로를 지켰다. 영화 <공범자들>은 그 뼈저린 기록이었다.

고백하건대 그들의 뉴스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개인적 외면에만 그친 것이 아니다. 지방의 어느 식당에서 습관처럼 틀어놓은 ‘엠비시 뉴스데스크’를 접하곤 식당 주인에게 진지하게 항의했던 적도 있다. 이미 부관참시당한 시청률 3%짜리 뉴스를 왜 보느냐며 다른 채널로 돌려주길 요구했다. 지난해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의 야유 속에 쫓겨나다시피 내몰리며 제대로 된 취재조차 하지 못할 땐 내심 쌤통이라 고소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인 중 한 기자는 리즈 시절의 기억, 그 자부심으로 9년 암흑을 버티고 있다 털어놓았다. 보도의 자율성이 보장되던 예전의 호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후배들에게 그래서 더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170일이라는 최장기간의 총파업, 5년 전의 혹독한 실패 이후 엠비시는 또다시 피디와 기자, 아나운서로 이어지는 대규모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케이비에스의 보도본부 300여명 역시 다음주 월요일부터 총체적 제작중단에 돌입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케이비에스 피디협회의 제작거부 동참이 속보로 들려온다. 마지막 사활을 내건 비장한 배수진이 도처에 만발하고 있다. 공영방송을 제대로 되살리는 것은 방송사 안에서 핍박받고 쫓겨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엠빙신’과 ‘캐백수’라 외면할 것이 아니라 예전에 사랑받던 ‘마봉춘’과 ‘고봉순’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공영방송의 주인인 우리 같은 시민 또한 각성과 관심을 일깨울 때다.

오늘 저녁 7시 청계광장에서 <돌마고 불금파티>가 열린다. 줄탁동시, 병아리와 어미닭이 안과 밖에서 동시에 쪼아야 온전히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다. 벌레들이 파먹어 병든 나무도 바람이 불어야 비로소 쓰러진다. 내부의 상처는 마음속 자흔으로 의연히 새기되, 시민들과 안팎에서 함께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그렇게 치유와 재기로 피어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공영방송을 되찾기 위한 우리들의 흥겨운 파티가 오늘 저녁 청계광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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