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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31 18:33 수정 : 2018.01.03 18:36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대학로엑스(X)포럼.
최근 연극계에선 두 건의 교수 갑질 사건이 논란이 되었다. 하나는 어느 시간강사의 강사직 박탈 건이다. 모교에서 십여년째 연극이론을 강의해오던 연극평론가 김숙현은 이번 학기 강의 배정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통고받았다. 그가 타 대학 교수들이 제작한 작품에 대해 ‘진부한 무대 구성에 연기 스타일까지 어설픈 아마추어적 무대’라 혹평한 일이 문제가 되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또 다른 교수 갑질 사건은 교수가 학생들의 창작물을 강탈한 건이다. 호원대 모 교수는 자신의 학생들이 창작한 연극이 지역 축제에 초청받자 갑자기 연출을 맡기로 나섰고, 아울러 자신의 남편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극단을 내세워 계약을 진행하려 했다.(<한겨레> 8월4일치 ‘학생들 창작공연 가로채려 한 교수’ 참조)

연극계에서는 이 두 사건의 배경에 연극학과와 연극계에 만연한 위계문화가 있음을 지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대학로엑스포럼을 8월28일 개최했다. 대학로엑스포럼은 연극계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자 연극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토론 공간이다. 이 토론회에는 평론가 김숙현과 동료 평론가들, 호원대 학생들과 타 대학 연극과 재학생, 졸업생 등 다양한 연극인들이 참석했다.

평론가 김숙현은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강사직 복직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냐”는 질문과 함께 “언론 보도 후, 모교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지 아느냐”며 질타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제도권에 안착하기 위한 생각은 전혀 없으며, 단지 현장평론의 독립성을 위해하는 교수들의 위계폭력을 고발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학생 창작물 강탈 건과 관련해, 문제의 교수와 해당 강의를 함께 진행했던 배우 나경민은 진상조사위원을 맡았던 다른 교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아직 계약서를 쓰거나 작품을 발표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미수로 그친 사건이며, 때문에 (해당 교수) 본인은 큰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그 교수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차피 그분은 잘리진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나 강사가) 패배하실 겁니다.” 실제로 교내 조사위원회는 학교의 명예를 지키려는 분위기로, 진상조사와 사건 해결에는 상당히 미온적이라며 이런 씁쓸한 질문을 던졌다

“제보를 결심하고, 이름을 공개하고,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는 학생들에게 ‘학교를 어지럽히고 있다’, ‘멀쩡한 학교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학생들 마음속에 더욱 확고해진 내면의 복종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직 움켜쥐지도 못한 욕망들을 잃을까봐 복종하게 되는 청춘들의 내면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해봤자 교수님들 사회는 끄떡없구나. 이러한 실패를 경험한 젊은 연극인들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밖에도 이 자리에서는 자신이 경험했던 위계폭력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연극 <빌라도 보고서>, <소리의 위력> 등을 연출했던 신유청은 대학 시절 자신의 연출 작품을 대학 스승이 가져가 교수 이름으로 외부 연극제에서 공연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학과장을 비롯해 학과 교수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고 했다. 극단 ‘C바이러스’의 이문원 대표는 토론의 말미에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우리는 가장 무서운 적과 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스승, 선배, 그리고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마주할 일 없는 정권을 비판하는 일은 오히려 수월했다. 매일 얼굴을 마주치는 스승, 선배와의 싸움은 보다 더 지난하다. 나아가 각자는 내면화된 굴종과 내재화된 권위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결국 자신 안의 적폐와의 싸움이다. 경직된 위계문화에서 비롯된 갑의 폭력, 이것이 비단 연극학과와 연극계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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