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21 18:27
수정 : 2017.09.21 20:26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에어콘 없는 방>. 원제는 ‘유신호텔 503호’다. 유신, 503.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연극은 지난해 11월 벽산희곡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그의 수인번호와는 무관하다. 다만, 그의 부친이 집권했던 유신시절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유관하다 볼 수 있겠다.
주인공은 젊은 시절 뉴욕에서 연출가로 입지를 굳혔던 실존인물 피터 현(1906~1993)이다. 작품은 일흔의 노인이 된 그가 부모님의 유분을 안치하러 귀국하면서 시작된다. 고국을 떠난 지 28년6개월 만의 귀국이다. 부친인 현순 목사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그는 1946년 4월4일 좌익 관련 혐의를 받고 한국에서 추방되었다.(연극 <에어콘 없는 방>에서는 그가 1946년 2월 한국을 떠난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때 그의 맏누이 앨리스 현(1903~1955) 또한 같은 혐의로 추방되었다.
아무래도 앨리스 현은 낯익은 이름일 것이다. ‘한국판 마타하리’, ‘박헌영의 애인’으로 호명되곤 하는 인물이니까. 하지만 이는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이미지로,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돌베개)의 작가 정병준은 이렇게 설명했다. “남북한의 누구도 현앨리스의 굴곡 많은 인생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박헌영 간첩사건의 조연으로 다양한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그녀가 인생의 주인공으로 조명받은 것은 아니었다. 북한은 현앨리스를 미국의 고용간첩으로, 남한은 그녀를 ‘한국판 마타하리’로 호명했지만 그녀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없었다. 그녀는 미국의 간첩, 이중첩자, 역공작, 미인계 등 첩보·애정소설의 통속적 여주인공의 이미지로 소비되었을 뿐이다.”
연극 <에어콘 없는 방>은, 그러나 앨리스 현이 아닌 피터 현에게 초점을 맞췄다. 현순 목사를 건국 공로자로 추서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한 유신정권은 피터 현을 초청한다. 그러나 1975년의 한국은 극단적 반공-전체주의인 유신체제하에 있던 시절. 추방 이후 한국 내 미군정 정책과 미국의 대한국 정책을 비판하는 등 정치활동을 지속해온 피터 현에게 고국 초청이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우울증과 신경쇠약을 앓던 터.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연극은 그가 겪는 심적 갈등을 호텔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자아분열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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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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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의 망상으로 무대 위에 구현된다. 망상 속에서 그를 수행하는 국가보훈처 직원은 중앙정보부(국정원) 과장으로 둔갑해 그를 취조한다. 그 과정에서 앨리스 현이 등장하고, 이어 박헌영이 소환된다. 이 모두가 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망상이나, 전혀 현실성 없는 망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바람이 섞이긴 했으나 망상은 그가 실제 겪었던 체험과 알고 있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니나 진실에 가까울 수도 있지 않을까.
흥미로운 건, 피터 현이 젊은 시절의 자신과 조우해 벌어지는 극중극 장면들이다. 그는 1930년대 중반 뉴욕연합극단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며 <황소 페르난디드>와 <비버들의 봉기>를 무대에 올린 적이 있다. 그중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누구도 다른 인간을 차별하거나 억압할 수 없으며, 그런 일이 벌어질 때에는 모두 단결해서 억압과 불평등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비버들의 봉기>는 흥행에 성공해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성공이 그를 연극계에서 떠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작품의 주제와 달리 배우들은 지도에서 이름마저 지워진 조선 출신의 연출가에 대한 인종적 차별을 거두지 않았다. 그들은 피터 현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엘리아 카잔을 앉혔다.
그런데 저 역설의 삶이 곧 피터 현의 삶이자 그의 가족의 삶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독립유공자와 유족들의 삶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복원되지 못한 역설의 삶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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