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0.26 18:21
수정 : 2017.10.26 21:11
박보나
미술가
주한미군이 지난 23일부터 5일간 한반도에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자국민을 일본으로 대피시키는 훈련을 실시한다고 한다. 미군 쪽은 이 훈련이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례적인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이 뉴스를 전하는 기자는, 무료 항공으로 일본 관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훈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나는 이 상황이 전혀 대수롭지 않지 않았는데, 미군이 한반도에서의 긴급 상황을 가정일지언정 유념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상황에서 미국인만 대피시킬 계획을 하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사실에 현실적인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폭력으로 내 평온한 일상을 파괴할 수 있는 힘들이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얀 보(Danh V?)의 작업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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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보 <우리, 그 사람들>, 2011~2013, 구리, 가변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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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생의 덴마크 미술가 얀 보는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시에서 두 개의 이미지를 병치시켜 보여주었다. 하나는 시폰 커튼 뒤에 가려져 있는 흑백의 사진들로,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두르고 있는 등의 베트남 남성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한쪽 벽에는 델라웨어주 교정당국의 범죄자 교수형 지침서가 새겨진 판이 걸려 있다. 이 두 이미지를 힐끗 보면, 동성애에 대한 폭력이 작업의 주제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얀 보는 이 두 이미지의 관계를 모호하게 제시함으로써,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일단, 사진 속 남자들을 동성애와 연결시킬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사형 지침서는 이 사진들과 한참 거리가 멀다. 따라서 베트남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과 이미지에 대한 관성적 해석 때문에 베트남의 일상적인 풍경을 오독한 것일 수 있다. 한편 델라웨어는 미국 헌법을 가장 먼저 승인한 미국의 첫번째 주인 만큼, 사형 집행 주체를 미국 그 자체로 대입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업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인 폭력, 베트남 전쟁에 관한 작업으로 읽을 수 있겠다. 전시 제목도 자그마치 ‘자위 질식’(autoerotic asphyxia)으로, 질식으로 쾌락을 얻는,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강대국으로서의 위치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나가는 미국이 슬며시 떠오른다. 이 전시는 진짜 폭력이 무엇인지 보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베트남전 종전 후, 보트피플로 떠돌다가 유럽에 정착한 얀 보는 개인적 경험을 역사적 상황 안에 겹쳐놓는다. <우리, 그 사람들>은 1센트 동전의 재료인 구리로 자유의 여신상의 표면을 실제 크기로 재현한 작업으로, 부분 조각으로만 전시된다. 보는 이 작업을 중국에서 제작한 뒤 자신이 머물렀던 난민 캠프가 있던 싱가포르를 통해 세계 여러 곳의 전시장으로 보낸다. 보의 작업에서 자유의 여신은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온전체가 아니라,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산산이 찢어진 조각이다. 이 조각들은 절망스러운 난민들처럼 혹은 미국이 던지는 폭탄의 파편처럼 전세계의 전시장을 떠돈다.
북한의 협박도 기가 막히지만, 그에 맞서 군사적 행동에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받아치는 미국도 끔찍하다.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평화를 원하는지를 상관하지 않고, 한껏 목을 조르는 힘이 원망스럽다. 베트남전을 비롯해, 미국이 반복해온 폭력과 얀 보의 산산조각 난 자유의 여신상이 우리의 지금과 겹쳐져, 오싹하기까지 하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 사용했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노래가 한국을 떠나라는 신호라는 소문이 농담처럼 돈다고 한다. 전혀 재미있지 않다. 크리스마스 노래가 들릴 때 전쟁과 파멸을 상상하며 떨고 싶지 않다. 언제나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무심하게 흘려들으면서, 조용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다. 나는 평화로운 일상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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