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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2 18:29 수정 : 2017.11.02 20:35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작곡가 윤이상의 탄생 100주년, 이번주 토요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다. 사망일이 11월3일로 알려져 있지만 장소가 베를린이었으니, 한국시간으론 11월4일에 돌아가신 셈이다. 이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는 윤이상의 음악세계와 인생을 재조명한 강연과 공연이 열린다. 작년만 해도 감히 성사를 꿈꾸지 못했을 사건이다. 세상이 머물러 있었다면 같은 해 탄생한 박정희에게 100주년의 의의를 양보해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정치적으로 각성시킨 이는 민족을 구렁텅이로 빠뜨린 박정희였다”란 윤이상의 절규처럼, 두 사람은 생전 격렬히 대립했다.

음악회가 처음 기획될 무렵,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새로운 관장을 찾고 있었다. 그 공석을 틈타 3개의 공연이 준비되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할 음악적 인물을 조명해보자는 것이 본래의 의도였는데, 나는 ‘김민기와 윤이상’을 강력히 제안했다. 윤이상의 강연과 연주는 내가 맡되, 김민기를 조명할 최적임자로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를 추천했다. 그렇게 기획안을 올리긴 했어도 과연 승인될 수 있을지는 반신반의했다. 1년 전이었으면 대차게 까이고도 남았을 주제 선정과 적임자 추천이란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예술감독으로서 꼭 일궈보고 싶은 음악적 사건이었다.

10월14일 ‘손목인과 김해송: 근대 대중가요 탄생의 주역들'의 한 장면.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제공

승인이 떨어졌다. 박물관장이 공석이어서 가능한 일이라고 농을 나누며 안도했다. ‘손목인과 김해송’도 합류해 일제강점기 우리 노래의 역사부터 되짚기로 했다. 그런데 공연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맹점이었다. 대신 박물관의 여러 모퉁이를 공연 장소로 발굴했다. 첫 공연은 청와대를 향한 탁 트인 전망에 북악산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박물관 옥상정원에서 펼쳐졌다. 장유정 교수님의 주도 아래 해방기 만발했던 근대 대중가요의 태동을 생생히 되살린 시간이었다. 두번째 공연은 그간 학문적 공간에 머물러 있던 박물관 강의실을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시적 언어가 깃든 아름다운 선율로 부당한 현실을 치열히 고발했던 김민기의 노래가 김창남과 조경옥의 노래로 고즈넉이 울려 퍼졌다.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를 통해 김민기와 함께 일궈온 그 시대 청년문화가 가슴 깊이 전달된 공연이었다.

내일(11월4일) 펼쳐질 윤이상 공연은 1970년대를 구현한 박물관의 ‘제3전시실’에서 진행된다. 3선 개헌과 동백림 사건이 충돌했던 시공간이건만, 아직 윤이상의 자리는 마련되지 못했었다. 사람들은 윤이상의 이름은 알아도 그의 음악은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세계 음악계가 윤이상을 일컬어 “20세기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으며 미래에도 없을 동양의 유일한 천재 작곡가”로, “모차르트의 곡처럼 50년, 100년 후에도 연주될 음악”으로, 명실공히 현대음악의 독보적인 거장으로 인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윤이상은 하나의 단음에도 생과 사를 부여하며, 붓글씨처럼 살아 있는 흐름으로 음향을 디자인했다. 작품 제목을 한글로 붙였고, 한국 전통설화에서 스토리를 발굴하는 등 우리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유럽의 연주자들은 윤이상의 음악을 통해 한국 정신문화의 깊이를 체험할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의 대상은 음악회장의 청중이 아니라 박물관을 찾은 일반관객이다. 그러므로 윤이상의 복잡한 음악과 굴곡진 인생을 간결하면서도 깊이 있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중립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것도 녹록잖은 과제다. 누군가 이렇게 평했다. 이 박물관에 윤이상이 등장한 것만으로도 유의미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의 전시실에 온당히 그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적 인물이라고. 그리고 엊그제,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은 새로운 관장을 맞이했다. 공석을 틈타야 할 만큼 외면받아온 윤이상의 음악이 내일 이 박물관에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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