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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09 18:11 수정 : 2017.11.09 21:05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달포 전 저녁 대학로에서였다. 한 공연장 앞에 사십 명은 족히 넘을 고등학생 무리가 줄지어 서 있었다. 한창 학업에 열중할 시기에 공연을 보러 온 학생들이 반갑고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이 관람하려는 공연의 간판을 보았을 때, 아… 낮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관람하는 공연이 하필 시간 때우기용 코미디라니. 인솔교사가 조금만 더 바지런하게 공연을 살펴봤다면, 저 공연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싶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일선 학교 교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번은 그가 학생들과 함께 단체관람 할 만한 공연을 추천해달라고 한 일이 있었다. 마침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연극 <짬뽕>이 공연 중이라 그 공연을 추천했다. <짬뽕>은 암울했던 현대사를 다루지만 너무 어둡지 않게, 외려 재미있게 그린 연극으로, 역사와 공연예술 양쪽으로 교육적 효과가 있으리라 판단해 망설임 없이 추천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관람을 하기 전부터 사달이 났다. 학생들에게 이념 편향적인 작품을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며 한 학부모가 항의성 전화를 걸어 관람을 보이콧하려 했다고 한다. 다행히 예정대로 단체관람을 진행할 수 있었고, 공연 만족도도 높아 한숨을 돌렸다고 그는 말했다.
뮤지컬 <빨래>. 씨에이치 수박 제공

그 기억이 포개어지니, 조야한 상업극을 보여주는 인솔교사의 심정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에게도 남모를 고충이 있었겠지. 의미는 없더라도, 의미가 없기에 상업극은 이런저런 논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손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상업극이 단체관람에 유리한 조건이 더 있다. 대부분의 상업극들은 언제든 관람이 가능하도록 평일에도 하루 2~3차례 공연을 한다. 티켓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무엇보다 상업극 기획사들은 일선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며칠 전 인천 초등학교 교감들이 근무시간 내 관람하려 했던 공연도 이와 비슷한 유의 상업극이었다. 어쨌거나 기획사에서 찾아와 공연정보를 찾는 수고를 덜어주니 교사 입장에서는 상업극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양질의 정극보다 수준 낮은 상업극들이 학생단체를 더 유치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다소 품을 들이더라도 학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작품을 찾으려는 교사도 계실 것이다. 혹은 감동을 안겨주는 작품을 찾으려는 교사도 계실 것이다. 가치 있는 공연을 보여주려는 교사가 분명 계실 것이다. 그분들의 고충은 어떤 공연이 유의미한 공연인지 판별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사실 공연을 관람하지 않은 상태에서 옥석을 가리는 건 전문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옥을 골라내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어도, 석을 가려내는 안전한 방법은 있다.

일단 티켓 예매사이트의 순위를 맹신하지 마시라. 불신할 까닭도 없지만, 맹신할 까닭도 없다. 순위가 높다는 건 많은 이들이 선택했다는 증거이지만 그것이 공연의 완성도까지 증명하지는 못한다. 특히 장기공연의 경우가 그렇다. 뮤지컬 <빨래> 같은 예외적인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기공연을 끌고 가는 힘은 예술성보다는 마케팅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 리뷰를 챙겨보는 일도 도움이 된다. 중요한 건 프리뷰가 아니라 리뷰를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공연에 관한 프리뷰 기사는 많지만 리뷰 기사가 없다면 공연 관람을 재고해도 좋을 듯싶다.

다음 주 목요일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학교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을 유치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각종 이벤트와 할인행사로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부디, 어떤 학생들에게는 첫 경험이 될, 대부분의 학생들에겐 졸업 전 마지막 추억이 될 공연 관람이 유의미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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