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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23 18:10 수정 : 2017.11.23 19:37

조은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예술감독

1928년 4월, 작곡가 라벨(M. Ravel)은 미국의 라이스대학에서 ‘동시대 음악’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 그는 에리크 사티(?ric Satie)가 프랑스 근대음악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이렇게 언급한다. “사티는 나 자신과 드뷔시를 비롯해 20세기 초에 활동한 프랑스 음악가 모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기괴한 천재였으며 항상 무언가 특이한 것을 탐구하는 발명가였다.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다가도 누군가 그를 답습한다 싶으면 방향을 급작스레 뒤틀어버리곤 했다. 그곳은 아무에게도 탐험되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다.”

작곡가 라벨.

사티의 피아노 소품집 제목은 <어눌한 듯한 예리함>이다. 부조리한 작명처럼 사티의 인성과 음악세계 역시 다분히 이중적이었다. 그의 음악은 조직적이지만 단순했고, 신비스러우나 가식을 벗어버렸다. 중세 성가의 향취를 담고 있는가 하면 미니멀리즘이나 신고전주의적인 면모들도 보인다. 그는 신비교와 연금술 등에 심취하더니 공산당과 사회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사티의 음악은 굳이 음악이라 의식하기에는 너무도 단조롭고 때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같이 들린다. 듣는 사람들을 온갖 강요로부터 해방시키며 편안하게 젖어드는 이 최면성은 주관적 감정으로부터 무심하게 거리감을 유지한다. 그는 이를 위해 특정한 모티브를 강조, 전개하는 독일적 방식 대신, 짧고 대칭적인 악구를 병치해 반복하는 전개를 선호하였다. 작품 첫머리에 나타나는 리듬 패턴이 전체에 걸쳐 지속된다거나, 쉬운 가락으로 되어 있는 멜로디, 교회 선법의 영향을 받은 맑은 하모니 역시 사티 음악의 전형적 특징이다. 시대를 선도한 그의 혁신적인 화성어법은 병행 4, 5, 7도, 해결되지 않는 7, 9도, 복화음, 복조성, 4도를 쌓아올린 화음 등의 과감한 사용으로 특징지을 수 있겠다.

그의 독특하고 불가해한 작품들은 음악 자체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자필 악보에 적어넣은 특징적인 지시에서 연유한 바도 크다. 가령 그는 악보 위에 ‘부드러운 혓바닥으로’, ‘두배로 인색하게’, ‘치통을 앓는 나이팅게일처럼’, ‘저 너머로’, ‘한순간 보이는 때에’, ‘조금 구워서’, ‘수줍고 차갑게’, ‘달걀처럼’, ‘매우 천하게’, ‘노란 벨벳 위에서’, ‘오만하지 않게’, ‘어금니 끝으로’ 등의 독특한 나타냄말을 적어넣었다. 그러므로 해석에 있어서의 핵심은 현란한 기교라기보다는 연주자의 특수한 심리상태일 것이다.

산티아고 루시뇰이 그린 에리크 사티 초상화.

이 난해한 정서와는 별도로 사티는 비본질적인 것을 배제한 단순함의 추종자였다. 감상주의와 웅장한 스케일에서 벗어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음악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특이한 기괴성을 내포하면서도 일체의 허식을 떨쳐버린 그의 투명한 음악은 동시대의 음악가 드뷔시와 라벨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바그너주의로 대변되는 게르마니즘에 날카로운 각을 세웠다. 이는 프랑스 6인조(Les Six) 이래 프랑스 근대음악의 원천이 되어, 후에 대두된 신고전주의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티는 4살 연상의 드뷔시(C. Debussy)를 1891년 처음 만나 금세 친구가 되었다. 음악적 아이디어를 나누다 드뷔시가 이렇게 충고한다. “나는 그대의 짐노페디를 사랑한 나머지 그중 두곡을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하기도 했었네. 자네는 정말 천재일세. 그런데 말이지. 신실한 친구로서 감히 충고하자면 때때로 자네의 작품에선 ‘형식의 결핍’ 같은 것이 느껴져 아쉽단 말이야.” 사티는 <배(梨) 형식(!)을 위한 세개의 곡>으로 드뷔시에게 재치있게 화답한다. 왜 제목을 이렇게 붙였는지 질문하자 더 이상 형식의 결핍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평 듣는 것이 싫었다 대답한다. 어눌한 듯한 예리함, 부조리의 작곡가다운 작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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