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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30 17:46 수정 : 2017.12.01 14:33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전쟁터 산책> 연습 사진. 왼쪽 제뽀 역의 백우람, 오른쪽 자뽀 역의 하지성. 극단 애인 제공
특별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외국 극작가가 한국전쟁을 모티브로 쓴 연극 <전쟁터 산책>이다. 작가는 배우로도 활동했던 스페인 출신 프랑스 작가 페르난도 아라발이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그를 두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폭력적이고 모독적인 방법을 통해 관객에게 충격을 주는 ‘패닉 연극’의 창시자”라고 극찬한 바 있다.

이러한 특징이 잘 발견되는 <전쟁터 산책>은 그의 데뷔작이다. 그는 스무살 시절 뉴스를 통해 한국전쟁의 참상을 접하고 영감을 받아 <전쟁터 산책>의 집필에 매달렸다. 작품은 1959년 초연과 함께 즉각 반향을 일으켰으며, 전세계에서 번역·공연되는 현상을 일으켰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북한의 극단에 의해서도 공연되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한국을 방문했던 아라발은 “모스크바에 갔을 때, 북한 극단이 이 작품을 공연하는 모습을 보며 감회에 젖었다”고 회고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전쟁터 산책>은 한국전쟁의 참상만을 고발하는 작품은 아니다. 지역색은 없다. 주인공은 서로 대치 중인 적국의 병사 자뽀와 제뽀. 본격적인 이야기는 자뽀의 부모가 야유회 차림으로 자뽀의 참호를 찾아오며 시작된다. “전쟁은 지루한 것”이라며 아들이 “심심할까봐 면회 왔다”는 부모는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한가로운 소풍을 즐긴다. 이내 적국의 병사 제뽀가 등장하나, 자뽀의 부모는 그를 마치 이웃 맞듯 다정하게 예의 갖춰 대한다. 마지막에 자뽀와 제뽀는 ‘적국이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각자의 사령관에게 전하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된다.

이처럼 <전쟁터 산책>은 리얼리즘과는 거리가 먼 부조리극이다. 총을 쏘지 못하는 군인인 자뽀와 제뽀, 산보하듯 전장을 산책하는 부모, 시체를 찾아 헤매는 위생병 등. 작품에 현실적인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전개 또한 그렇다. 비논리적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시킨다.

그러나 이 연극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작품은 극단 애인(대표 김지수)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극단 애인은 소아마비, 뇌병변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이들로 구성된 장애인 극단이다. 직업도 다양하다. 공연이 본업인 경우도 있지만, 단원 중에는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도 있고, 재택근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는 이들도 있다. 이런 이들이 모여 10년 동안이나 극단을 유지하며 매년 한 편 이상의 공연을 무대에 올려왔다. 그것도 자신들만의 언어로. 비장애인들의 연기 방식을 따라한 게 아니었다. 장애인만의 고유한 언어를 개발, 발전시켜왔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을까.

이들과 창단 때부터 연이 이어오고 있는 이연주 연출은 이렇게 말한다. “각자의 표현을 찾아가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합니다. 집중된 연습시간을 갖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이번 공연만 해도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연습실을 찾느라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엔 구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도움으로 한 공간을 빌려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연습실 대관부터 매 순간이 장애의 연속이다. 국내 극장 중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된 공연장이 많지 않고, 그나마 공공극장의 장애인석 비율도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이연주 연출이 이어 말한다. “장애인석을 보유한 극장은 많지만 사실상 대관에 어려움이 있고, 장애인 배우를 위한 시설은 더더욱 부족합니다. 공공극장에서 시설 교체나 장소 지원 등을 통해 장애인 극단의 공연 기회를 열어주었으면 합니다.”

특별한 연극이라 명명했지만, 그들은 그 ‘특별한’이란 수식이 탐탁지 않을 수도 있겠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의 차별과 구별이 없는 평등한 사회. 자신의 장애가 아니라 오로지 연기력으로 평가받는 세상. 아직은 구호에 불과하겠지만, 그것이 그들이 바라는 세계 아닐까. <전쟁터 산책>은 12월11일부터 17일까지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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