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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2.07 18:55 수정 : 2017.12.07 19:42

박보나
미술가

지난주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역사를 몸으로 쓰다’를 보고 왔다. ‘역사를 몸으로 쓰다’는 196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미술가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와 사진 작업을 볼 수 있는 전시이다. 퍼포먼스 작업의 경우, 작가나 퍼포머는 그림이나 입체물 같은 물질적인 매개체 없이 직접 관객을 만나고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이 직접성 때문에, 퍼포먼스는 날것 같은 생명력을 가지고 서걱거림을 만들어낸다. 특히, 작가의 몸이 작업 전면에 드러나는 작업들이 내뿜는 더운 숨은 한층 강렬하다.

중국 미술가 쑹둥의 1996년 퍼포먼스 <호흡, 천안문 광장>과 <호흡, 허우하이 호수>는 작가가 한겨울의 혹한에 천안문 광장과 단단히 얼어붙은 허우하이 호수에 배를 대고 엎드린 채, 40분 동안 바닥에 입김을 부는 작업이다. 차디찬 광장의 시멘트 바닥과 호수의 얼음 수면을 견디면서, 작가는 숨을 내뱉는다. 몹시 추워 보이는 작가의 몸 이외에, 퍼포먼스의 결과는 미미하다 못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입김으로 얼음은 전혀 녹지 않고, 찬 바닥만 잠깐 동안 아주 엷게 덥혀진다.

프랑시스 알리스, <실천의 모순: 가끔은 무엇인가를 만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퍼포먼스, 1997.

멕시코에서 활동 중인 벨기에 작가 프랑시스 알리스가 1997년 멕시코시티의 거리에서 했던 퍼포먼스도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알리스의 퍼포먼스 <실천의 모순: 가끔은 무엇인가를 만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작가가 얼음덩어리를 밀면서,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9시간 동안 도시를 돌아다니는 작업이다. 손이 시리고, 허리와 다리가 아프도록 반나절 가까이 걸어다니는 수고 뒤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얼음이 남긴 물기의 흔적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고, 얼음덩어리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진다.

쑹둥과 알리스는 물질로 된 작품을 만들지 않고, 숨을 쉬고 땀을 흘리는 작가의 몸의 상태와 정체성, 그리고 움직임 자체를 작업으로 하여 의미를 만든다. 중국 작가 쑹둥이 추위를 견디며, 입김을 부는 연약한 제스처는 중국의 억압적 정치와 현실이라는 추위에 맞서는 개인들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엎드려 있는 작가의 신체 너머로 보이는 천안문의 크고 견고함과 대조되는 작가의 작은 입김 한숨이 안쓰러운 만큼, 좀 더 마음이 쓰인다. 큰 목소리로 저항과 반대를 외치는 것과는 또 다른 결의 울림을 준다.

알리스의 퍼포먼스는 거리의 행상인들, 혹은 노동자들의 모습과 겹친다. 하루 종일 물건을 끌고 다니고, 열심히 일해도, 형편없이 적은 보수를 받는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퍼포먼스에서 작가의 신체적 고단함이 커질수록, 과도한 노동과 적은 보상 사이의 불합리한 차이는 더 극명해진다. 굵은 글씨로 무엇이 문제인지 쓰고 있지 않지만, 작가가 흘린 땀은 노동 구조의 모순을 선명히 전달한다.

두 작가의 퍼포먼스는 최대의 생산성과 효율성, 이성적 논리를 추구하는 관점에서 볼 때,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술 작업으로서 이들의 퍼포먼스는 비생산적이고 효율적이지 않은 지점에서 의미가 생긴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연약한 제스처는 그것이 맞서는 강경한 힘을 폭로하고, 최소한의 결과물은 그 힘이 강요하는 구조의 폭력과 모순을 최대한으로 노출시킨다. 이들은 물감이나 흙, 펜, 혹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몸을 통해 세상을 향한 단단한 목소리를 만들어낸다.

‘역사를 몸으로 쓰다’ 전에서 작가들은 언어나 형상의 재현 너머의 몸을 통한 표현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각기 다른 작업에서 역사적, 문화적 기억을 몸에 담고, 일상적 행위에서 사회·정치적 의미를 만들어내며, 함께 움직임으로써 공동체의 구성을 시도한다. 그들의 몸을 통해 과거를 증언하며,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그렇게 ‘역사를 몸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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