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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박사과정 나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에서 왔으니 자연히 이곳 사람들에게 북에 대해, 그곳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말을 어쩜 이리 잘하세요?” 상대가 이렇게 물어오면 이상하게 할 말이 없습니다. 글쎄요. “실제 말을 잘할 수 있는 곳은 여기 한국이 아닌가요?”라고 되묻고 싶은데 말이에요. ‘여기야말로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할 수 있는 나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스치고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그냥 주어진 말만 하고 살았거든요. 처음에는 질문이 이해가 안돼서 대답을 못했고, 좀 지나서는 이해를 했는데도 말을 못했고, 나중에는 상대가 오히려 기분 나빠할까봐 말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북에서 온 사람들은 대개 말을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애써 답을 찾으려고 시간을 보낸 적도 없지 않습니다. 자꾸 물어보니까 뭔가 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았고, 나 자신도 그 이유가 차츰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왜 그렇게 말을 잘하는지 이유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에서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을 따라 말하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주변에 가면 늘 학교 전체에 글 읽는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라고 답을 했어요. 그러나 이 대답도 왠지 정확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탈북인 누군가는 그랬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매주 ‘생활총화’라는 것을 하기 때문에 말을 잘한다고요. 그런가 하면 한국의 어느 교수님은 북한 사람들이 시험을 주관식으로 봐서 그럴 거라고 했습니다. 북한은 배운 내용을 통째로 외워서 그대로 옮겨 써야 하기 때문이라고요. 남한은 객관식이라 그게 안 된대요. 그것도 맞는 말 같지만 뭔가 부족합니다. 아직도 정답이 딱히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 질문을 받으면 어느덧 그냥 웃어넘깁니다.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요. 대신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데 왜 이곳 사람들은 꼭 정답을 들으려고 하지, 혹시 북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와 같다는 것이 불편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당연히 달라야 하는데 같다는 사실이 이상해서…. ‘너’, ‘나’가 아닌 ‘우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말이에요. 나는 북에 친인척이 있습니다. 내 신원이 노출되면 그분들에게 어려움이 생길지 모릅니다. 신문에 글을 내면서도 얼굴을 온전히 공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얼굴을 가렸기에 오히려 목소리가 더 생생히 전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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