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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9 18:03 수정 : 2016.10.19 20:21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은 새롭게 ‘적응’해야 할 사회입니다. ‘적응’의 시기를 보낼 때 가장 많이 듣던 말은 바로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입니다.

당시 저는 이 말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왔으니 ‘당연히 법을 잘 지키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적응’ 과정에 법을 몰라 문제를 일으킨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일상이 법보다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상의 모든 것에 나름의 규칙이 있었고 이를 잘 따르는 것이 곧 ‘적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규칙들은 우리가 미처 생각할 수 없는 것,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 그 안에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로 넘쳐났습니다. 우리의 ‘적응’은 그러한 것으로부터 수많은 시행착오와 후회와 경험의 순간들에 의존합니다. 여기에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탓해봐야 소용없고, 흐르는 세월 붙잡아 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넋 놓고 볼 부은 소리만 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에는 무엇에 쫓기듯, 무언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달려야 하는지도 모르고 남이 달리기에 같이 달릴 때도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왔기에,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하였기에 멈출 수조차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적응’은 저희같이 새로운 세상에 이주해 온 사람들만의 몫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적응’은 우리와 만나는, 함께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기도 했습니다. 그들 역시도 ‘적응’의 의미를 되새겨야만 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적응’은 온전히 이주민의 몫으로만 인식되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우리를 만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이 하면서 겪어보지 않으면 몰랐던 것, 그들과 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에 노출되었습니다. ‘로마에 가면’이 아닌 ‘로마에 오면’으로 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주민으로 인하여 함께하는 경계, 공간, 사회는 곧 ‘로마’가 되었습니다. 이 경계와 공간과 사회에 들어서는 순간 서로는 새로운 사회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적응’이 타자의 ‘과제’에서 우리의 ‘과제’로 바뀐 것입니다.

이주민은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여전히 그들에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로마에 오면’ 스스로를 ‘적응’에 맡기는 용기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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