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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6 18:23 수정 : 2016.11.16 20:34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그곳에서도 제가 살았던 데는 북한에서도 가장 추운 곳이었습니다.

북에서 온 이후로 가끔은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북한에, 고향에 가고 싶지 않냐고, 통일이 되면 북한에 가지 않겠냐고요. 저는 북한에 다시 가고 싶지 않냐고 물어온다면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고향이라 하면 어느 누구인들 가고 싶지 않겠느냐마는 너무 추웠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라고 할까요? 남쪽에서 살기 시작한 뒤로 추위가 시작되는 11월이 오면 내가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한동안은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하도 추운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뉴스에서 춥다는 말만 나오면 몇 벌을 껴입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살았던 곳은 춥다고 해도 입을 옷이 없어서 추위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껴입는 데 입을 옷이 많다는 것에 정말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면 너무 더워서 혼이 났습니다. 건물이나 사무실에 들어가면 얼마나 따뜻한지 입고 온 옷 벗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첫해 겨울 그렇게 고생하고 나니 이후부터는 많이 입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랬더니 또 감기 걸려서 몇 날 며칠 콜록콜록하면서 다녔습니다. 그 추운 곳에서도 안 걸리던 감기, 한 달에 한 번씩 걸렸습니다. 주변에서 날 보고 백두산 밑에서 살다 온 사람이 그리 골골거리느냐면서 놀렸습니다. 나 자신도 참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몇 년 지나고 나니 정말 이곳 겨울은 따뜻합니다. 그런데도 밤 기온이 영하 9도면 춥다고 야단이었습니다. 그러고 다음날 아침 세상에 그렇게 두툼한 동복을 떨쳐입고 거리로 나오시는 많은 분들을 나는 정말 뭣에 홀린 것처럼 쳐다보았습니다. 그런 동복은 우리 동네에서나 어울리겠구먼, 이만한 날씨에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뭐하는 거냐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였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변변히 입지 못하고 추위에 떨던 시절을 생각할수록 따뜻한 남쪽 나라 이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1년 열두 달 끊이지 않고 공급되는 전기, 물, 가스 등 모든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따뜻한 남쪽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은 행운 그 자체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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