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2.20 18:25
수정 : 2017.12.20 19:12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공부에 전념합니다. 학생 때는 학생이기 때문에 공부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공부는 필요합니다. 학업의 부족함을 느끼기에 이제는 스스로 공부를 합니다.
며칠 전 그 공부에 필요한 책이 있어 광화문의 책방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빼곡히 꽂힌 책들과 그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수많은 인파에 아무렇지 않게 섞여 책을 찾았습니다.
‘선택’ 그 자체가 낯설고 불편하던 때는 이제 지났습니다. 이제는 상품마다 가격이 다르고 크기가 제각각인 이유가 이해됩니다. 대형마트에 간장 사러 갔다가 십여 가지 간장 종류와 각각의 가격에 겁에 질려 빈손으로 집에 와야 했던 일은 이제 과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할 일이 생겼습니다.
책 하나 고르는데 목차 비교하고, 출판 일자 비교하고, 몇번째 인쇄인지 살펴보고, 집필자 이력 찾아보고 등등 강가에서 금싸라기 고르듯이 정교해졌습니다. 그러고도 끝난 것이 아닙니다. 행여 중고 매장에 나온 책은 없는지 검색해보고 책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검색에 검색을 거듭합니다. 그러고도 뭔가 놓친 건 없는지 생각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두 권의 책을 샀습니다. 필요로 했던 책이기에 무거운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책 두 권을 사느라고 들인 시간을 생각해보면 유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시간을 들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쉽게 뚝딱 되는 일이 없습니다. 거의 매번 시간을 들이고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산더미같이 쌓인 정보와 물건의 홍수가 과거 단순명료하던 시기를 그립게 합니다.
한편으로는 유한한 가능성의 공간에서 선택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책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화젯거리인 주제, 솔깃한 제목, 현란한 글쓰기, 저자의 화려한 경력, 발 빠른 발매, 남과 다른 구성, 가격, 1인 저자와 다수의 저자 간 미묘한 신경전, 심지어 책의 두께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것을 고려합니다. 그렇게 선택된 두 권의 책조차도 나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선택이 안 된 다른 책들과 비교해 분명히 가장 나은 것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하면서 공들인 나 자신을 위로합니다.
그 책방은 남과는 다른 나를 어필해야 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하는 우리 사회의 한 면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나는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면서 현대인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내가 날이 갈수록 바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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