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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와서 산 지 수년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음식이란 하루 세끼 식사의 의미 외에 다른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었습니다. 밥과 국, 김치면 만족해야 했던 북한에서의 식생활 습관은 이곳에 와서도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습니다. 저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집 근처 어디에 좋은 맛집이 있는지, 어느 집에 가면 어떤 음식이 주로 나오는지 신경조차 안 썼습니다. 그러던 내가 정착의 시간이 길어지고 여러 친구와 어울리면서 별의별 음식의 신세계로 초대되었습니다. 여러 식당을 돌며 갖가지 음식을 먹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취향이 생기고 호불호가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맛있는 음식, 좋은 식당을 찾으면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있는지 검색하기 시작했고 직접 가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온 해산물 식당은 그중 하나입니다. 끌리듯 들어간 그 식당에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어를 팔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문어는 대부분 동해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귀한지라 몇 년에 한 번 맛을 보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그렇게 한 번 먹은 문어가 워낙 인상 깊어 어릴 적 먹은 그 맛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문어가 귀하니 바닷가에 사는 저희 이모님은 문어를 잡으면 나중을 생각하여 말려놓곤 하였습니다. 이모님의 이야기에 의하면 임신하고 문어 머리를 먹으면 예쁜 아이를 낳는다 합니다. 하여 나이 찬 딸이 있는 집에서 문어 머리를 말리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린 문어 머리 한 줌이 저를 따라 나중에 한국에 오신 어머님 손에 들려 있었습니다. 이모님이 아직 결혼은 안 한 조카를 생각해 어머니께 쥐여 보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문어만 보면 바닷가에 살고 계신 이모님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런데 서울 한복판에서, 내가 사는 동네에서 싱싱한 문어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친구랑 같이 가서 문어를 배불리 먹었습니다. 맛집이라고 내가 직접 친구를 데리고 간 것도 그때가 처음입니다. 그날 새롭게 먹은 음식 중에 매생이국도 있습니다. 매생이국에 마냥 신기해하니 친구가 어머니 음식 솜씨를 자랑하였고 저는 다음날 친구 어머니가 해준 매생이떡국을 먹었습니다. 그날 친구 어머니는 매생이국은 ‘장모가 사위가 미울 때 해 주는 음식’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이 속설에 즐거워하며 매생이떡국을 후루룩후루룩 들이켰습니다. 남과 북 음식에 담긴 이야기들을 묶어 책을 내면 참 재미있겠다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며칠 전에는 홍어삼합에 도전했습니다. 그날따라 코감기로 아무 냄새를 맡을 수 없었던 나는 용기를 내어 홍어 맛보기에 도전했고, 홍어가 다른 해산물의 식감과 다르다는 점을 처음 느꼈습니다. 추억이 담긴 음식, 새로 알게 된 음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 새삼 한국에 와서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집 밖 몇 발자국 나가면 세상 음식 맛볼 수 있는 이 사회의 매력에 지금에야 발을 들인 게 아쉬울 뿐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이런 느낌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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