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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01 18:02 수정 : 2018.08.01 19:59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한 정부는 일본에 대해 매우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해 주민들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선망과 동경이 있었습니다. 이는 ‘본산제’라고 불리는 일본 중고물품을 통해 접하고 ‘재포’라고 불리는 재일동포들을 통해 경험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일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한국에 온 후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가볼 수 있는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여행사를 통해, 또는 친구와 같이 계획을 세워 가을과 겨울에 몇번 갔다 왔습니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한여름 일본 여행은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올여름 겁도 없이 37~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일본 남부 지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살면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불볕더위를 겪었습니다. 하지만 무더위보다 더한 충격은 따로 있었습니다. 저는 일본 하면 세계 선진국, 당연히 한국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누리는 나라 등으로 좋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여름의 일본은 그러한 인식을 싹 가시게 했습니다.

여행객으로서 내 눈에 들어온 이상한 나라 일본의 모습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하철 이용입니다. 우리나라 지하철은 승객 안전을 위해 스크린 도어가 설치되었고, 노약자 등 승객이 불편할까 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등 나날이 편리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언제적인지 모를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스크린 도어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철도 기관사가 그 나름 승객 안전을 위해 역에 정차할 때 플랫폼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을 보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하철역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없었고, 엄청난 무더위에도 에어컨은 겨우 몇대가 있을 뿐이며, 그마저도 시원한 바람이 아닌 더운 바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어컨은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상대적으로 노인 인구가 많은 일본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노인이 무척이나 적었습니다.

또 하나는 식당 문화입니다. 이 무더위에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고 의자와 의자, 테이블과 테이블 간격은 너무 비좁아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일하시는 분들의 목에 둘러진 수건은 그동안 일본에 대한 저의 동경을 완전히 깨지게 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최근까지도 영화나 다큐를 통해 일본인 하면 수건을 목에 감거나 머리에 질끈 동여맨 프로다운 사람 또는 장인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쩌면 목에 감긴 수건을 통해 집념과 열정이 보였다고 할까요? 그런데 올여름 내 눈에 비친 모습은 프로나 장인이 아닌, 이 무더위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기 위한 문자 그대로 수건이었습니다. 그것은 뜨거운 태양 아래 노출되어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야만 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였습니다.

일본에 있는 내내 무더위와 씨름하다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온몸으로 느낀 행복감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이후 저는 우리 사회 모든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들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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