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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남과 북의 차이 가운데 대표적인 부분이 언어라고 합니다. 북한식 억양과 사투리 외에도 직설화법이 그 예입니다. 저는 상대가 콕 집어 말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거나 빙빙 돌려 말하면 그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뉴스에서 기자가 일반인을 상대로 인터뷰하면 ‘좋습니다’ 해도 될 것을 ‘좋은 거 같아요’ 하거나 ‘…인 것 같아요’라고 말을 하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줏대가 없이 사는 것 같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싫다’ ‘좋다’ ‘아니다’ ‘나쁘다’를 분명하게 표현하도록 교육받았고, 그렇게 말을 해왔습니다. 요즘 들어 저는 단어 교정의 필요성을 더욱 느낍니다. 적응이라는 사회적 문제 앞에서 항상 긴장하고 살 때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빨리 적응해야 했던 탓에 북한에서 쓰던 용어는 스스로 경계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식 억양과 사투리, 단어 선택에서 혼란스러움은 남아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삶의 여유를 느끼고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북한식 직설적인 화법이 나도 모르게 나오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강조한다고 나도 모르게 ‘꼴리다’ ‘짱 박히다’ ‘죽치다’ 등의 말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쓰던 말 중에서 ‘틀리다’를 ‘다르다’로 바꾸어 말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1년 전입니다. 문제는 북에서 남으로 오신 부모님을 만나 뵙고 오거나 통화를 하면 더 심하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부모님과의 대화는 알아듣기 쉽게, 내용을 빨리 전달해야 하므로 북한식 직설화법을 익숙하게 쓰는 편입니다. 지금도 저의 엄마가 압록강을 건너던 당시를 떠올립니다. 좋은 말로 해서는 오늘 밤 중으로 넘어올 기미가 안 보여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그렇게 격하게, 크게, 욕설과 호통으로 엄마와 통화했습니다. 그 덕분에 엄마는 무사히 제시간에 강을 넘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넘어올 때, 집에 있는 사진을 되도록 다 챙겨 오라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 내 사진 일부만 가져오셨습니다. 나중에 한국에서 고향과 친인척을 그리워하시며, ‘네가 그때 좀 더 세게 말을 하지 않아’ 그랬다고 하셨을 때, 역시 북한 사람들에게는 세게 말을 해야 한다고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과의 화법이 일상에 그대로 연장돼 신랑에게 전달되는 순간 의미는 달라집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에 낯설고, 당황스러움이 교차하는 얼굴로 저를 쳐다볼 때에야 ‘아, 내가 잘못 말했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이제는 옆에서 부지런히 교정해줍니다. 그런데도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자칫 시부모님 앞에서 저희 부모님께 하던 말버릇 그대로 되풀이할까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단어 교정의 필요성을 자각한 지금은 좀 친하거나 스스럼없는 친구 사이에도 조심스럽긴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내일’을 ‘내일에’라고 이야기하거나 ‘항문’을 북한 용어인 ‘홍문’이라 말해 상대방이 못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언어생활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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