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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3 18:10 수정 : 2019.03.13 19:18

진나리
대학원 박사과정

저는 북에서 왔습니다. 북에 있을 때 부모님은 제가 어릴 적 자라는 모습을 기록해두려고 1년 중 설과 봄가을에 사진관이나 공원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어쩌다 한번 사진 찍는데 사진사 아저씨들은 왜 그렇게 대충 찍어주는지, 카메라 바라보는 것도 어색하고 어떻게 표정을 지을지도 몰라 하는데 아저씨는 무관심하게 하나 둘 셋 하고 끝이었습니다. 운 좋으면 눈 감았다고 한번 더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면 아버지 어머니는 다른 데 보지 말고 눈 감지 말고 카메라 잘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 사진들을 보면 표정이 굳어 있거나 카메라를 노려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북한을 떠나 남한에 온 이후 저는 고향 생각 나고 부모님 생각 날 때마다 그 사진들이 못 견디게 그리웠습니다. 그러다 어머니를 모셔오게 되었고 저는 다른 건 다 두고 와도 사진은 전부 챙겨 오라고 특별히 주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생사를 오가는 국경을 건너야 하는데 사진이 웬 말이냐”고 강하게 거부를 하셨습니다. 그러는 어머니를 겨우 설득을 하였고, 그렇게 강 건너 도착한 사진은 제 사진을 포함해 몇장뿐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많던 사진 중 제 사진 일부와 한두장 정도만 가족사진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사진은 혹시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까 두려워 다 태우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사선을 넘는데 사진을 가져오라고 한 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잘 도착한 뒤에야 어머니는 그 사진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고 그때를 후회하고 계십니다. “네가 그때 좀 더 세게 말을 했어야지” 하시면서요. 그나마 한두장 들고 오신 어머니 가족사진이 위안이 되어 북에 계신 형제분들, 그리고 부모님 생각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지금도 빛바랜 그 사진들은 어머니의 서랍 깊은 곳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북에서 살 때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찍고 현상하여 인화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카메라에 휴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고 합니다. 한국에 와서 저 역시도 디지털카메라와 휴대폰으로 찍은 수많은 사진이 있습니다. 한두장뿐이지만 추억 생생한 북한의 그 사진들도 휴대폰에 저장되었습니다. 사진에 취미가 붙어 한때는 비싼 카메라도 샀지만, 결국은 들고 다니기 힘들어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습니다. 북에서야 비싼 필름 카메라 탓에 한두번 찍으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휴대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사진 찍고 언제든 꺼내 봅니다.

결혼 뒤 저는 신랑과 사랑하는 아기와 함께 한 가족사진을 출력해놓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1~2년 동안에 찍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진은 저를 놀라게 했고 이를 정리하는 게 훨씬 힘들었습니다. 다음에는 미리 출력할 사진만을 골라놓아야지 결심했지만 지금도 저의 휴대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사진이 쌓여만 갑니다.

과거에는 몇장 안 되는 사진으로 만족했지만 이제는 항상 열려 있는 기회와 좋은 카메라 덕분에 매일이 아름다운 화보가 됩니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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