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발견한 은행나무 잎. 김민철 제공
|
[ESC] 김민철의 가로늦게
따뜻하고 예쁜 계절을 찾아 여행을 떠난 ‘겨울 마니아’의 묵상
|
회사 앞 횡단보도에서 발견한 은행나무 잎. 김민철 제공
|
|
봄마다 손을 내미는 걸 몰랐다
겨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느라
한번도 봄을 보려 하지 않은 것이다 바쁜 회사일에는 눈을 질끈 감기로 했다. 휴가를 내겠다 말했다. 지도를 펼쳐놓고 고민을 하다가 지리산을 택했다. 남쪽이니까 꽃이 다 피었을 것이고, 산이니까 꽃이 지천일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계곡마다 진달래겠지. 이름 모를 꽃들이 바위틈마다 돋아나고 있겠지. 야심차게 지리산에 도착했으나 꽃은 없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다급한 마음에 나는 지리산 계곡 옆에서 막걸리 파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저, 여기 꽃구경하러 왔는데, 꽃이 하나도 안 피었네요?” “꽃 보려면 하동 같은 섬진강 쪽으로 가야지. 여긴 고산지대잖아. 꽃이 제일 늦게 피지. 서울보다 늦게 필걸?” 아, 어리석은 도시인이여. 고도도 계산할 줄 모르는 도시인이여. 나는 그저 남쪽이면 다 똑같은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 생애 처음 봄을 향한 여행은, 가장 익숙한 겨울을 향한 여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보며 걷고 또 걸었고,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술을 마셨다. 밤새도록 뜨끈뜨끈했던 민박집 방바닥에 몸을 지지면서 그저 주인아주머니의 난방 인심에 감사해야 했다. 여행은 즐거웠지만, 원래의 목적을 생각하자면 완벽한 실패에 가까웠다. 그게 벌써 몇 년 전의 일이다. 지난주, 나는 다시 한번 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지난 여행의 과오를 떠올리며, 이번엔 완벽을 기했다. 통영. 가장 남쪽의 도시. 고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 미리 확인해보니 기온도 서울보다 5도 이상 높았다. 앗싸, 이번엔 진짜 봄맞이 여행이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통영에 도착했다. 버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봄이 지천에서 쏟아져 들어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날씨도 좋았고, 햇살도 좋았고, 서울보다 따뜻하고 다 좋긴 한데, 그렇다고 그 날씨를 봄이라 우길 수는 없었다. 아차, 아직 2월이구나. 아, 나의 봄맞이 여행은 이번에도 실패로 돌아가는 건가. 같이 간 선배가 유독 꽃에 민감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배는 길을 걷다가 갑자기 킁킁거리며 “매화가 주변에 있나봐!”라고 말했고, 어김없이 매화꽃을 찾아냈다. 길을 걷다가 동백꽃을 찾아내는 것도 선배였다. “하얀색 동백이야!” “저기 조금 덜 핀 저 동백, 완전 예쁘지?” 봄은 구석구석에서 조금씩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물론 그중 내게 가장 깊이 와닿은 봄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시장 할머니 좌판 위, 도다리와 쑥이 나란히 놓여 있는 풍경이었다. 예쁜 봄도 좋지만, 맛있는 봄이 난 더 좋으니까. ‘봄은 오지 않아요. 당신이 가는 거예요.’ 한 소풍용 도시락 카피라고 한다. 봄을 찾아 지리산에 갔고, 봄을 찾아 통영에 갔다. 그리고 봄을 찾아, 당연하게 오지 않는 바로 그 봄을 찾아 지난겨울 우리는 광화문에 갔다. 예쁜 봄도 좋고 맛있는 봄도 좋지만, 3월 중순에 올 그 봄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벌써부터 떨린다. 그 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김민철 카피라이터·<모든 요일의 여행> 지은이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