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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8 19:43 수정 : 2016.10.06 16:44

[매거진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관매도 참조기 굴비

관매도 굴비. 강제윤 제공
보리굴비가 진짜 보리굴비일까. 본래 보리굴비는 참조기를 말려 보릿독에 보관해두고 먹던 것이다. 하지만 요새 보리굴비란 이름으로 도시의 식당에서 내놓는 것은 대부분 말린 보구치(부서)를 냉장 보관한 것들이다. 참조기굴비도 아니고 보릿독에 보관하는 것도 아닌 부서굴비를 어찌 보리굴비라 할 수 있을까.

설령 보릿독에 보관해두고 먹는다 해도 참조기로 만든 굴비가 아닌 이상 보리굴비라 할 수 없다. 실상 우리는 보리굴비가 아니라 그 상표를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또 흔히 먹는 참조기로 만든 굴비란 것도 결코 굴비가 아니다. 소금에 절인 참조기를 서너 시간 정도 말린 반건조 조기다. 명태를 반건조한 코다리를 황태라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코다리와 황태의 맛이 다르듯이 반건조 조기와 굴비의 맛 또한 차원이 다르다. 황태처럼 굴비도 사람이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닷바람과 햇빛, 사람의 합작품이다.

굴비는 영광굴비가 대명사지만, 과거에는 조기가 나는 곳이면 어디서나 굴비를 만들었다. 연평도나 소무의도, 송이도, 관매도 같은 섬에서도 굴비를 만들었다.

굴비의 원산지답게 영광 법성포 굴비는 공정이 무척 까다롭다. 칠산 바다에서 잡아온 참조기에 소금이 내장까지 배어들게 간질(기소금)을 해서 사흘 정도 간독에 절인 뒤 덕장에서 말렸다. 소나무를 엮어서 만든 덕장 가운데는 구덩이를 팠다. 낮에는 바닷바람과 햇빛에 말리고 밤에는 구덩이에 숯불을 피워서 말렸다. 그렇게 덕장에서 해풍과 태양, 숯불의 열기에 마르고 밤이슬의 단맛까지 첨가돼 3개월 정도 바짝 마른 조기는 마침내 전혀 새로운 맛을 지닌 굴비로 재탄생했다. 그것이 진짜 굴비였다. 이 굴비를 통보리 독에 보관한 것을 보리굴비라 했다. 보릿독에 굴비를 넣어둔 것은 보리 항아리 속이 늘 서늘하고 보릿겨가 굴비에서 배어 나오는 기름을 잡아줘서 굴비 원래의 맛을 유지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냉장고가 있으니 굳이 보릿독에 묻어둘 이유가 없다.

과거 참조기 떼의 한 부류는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면 산란을 위해 한국의 서해바다를 찾아오는 회유성 물고기였다. 이들이 흑산 어장을 거쳐 영광의 칠산 어장까지 올라올 때가 철쭉꽃 피는 곡우 무렵이었다. 그래서 이때 칠산 어장에서 잡은 조기를 곡우사리 조기 혹은 오사리 조기라 했다. 오사리란 새해 다섯번째 드는 사리 물때란 뜻이다. 이 조기로 만든 굴비라야 오사리 굴비 혹은 곡우사리 굴비고 보리굴비였다. 이 무렵 조기는 기름기와 살이 오르고 알을 배어 그 맛이 최상이었다.

이제 더 이상 칠산 바다의 진짜 참조기로 만든 오사리굴비도, 보리굴비도 맛보기 힘든 시절이 됐다. 그런데 아직도 영광처럼 전통 방식으로 참조기 굴비를 만드는 섬이 있다.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돼 섬 가꾸기가 진행 중인 관매도다. 국립공원 명품 마을 1호인 진도 관매도는 자연과 사람살이의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된 섬이다. 국립공원 지역의 섬들이 개발을 위해 국립공원에서 벗어나려 할 때 국립공원으로 남겠다고 자처한 섬이 관매도다.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받은 3만평 규모의 300년 해송 숲은 가히 서해안 최고라 할 만하다. 관매도에서는 제사나 명절, 반찬용으로 굴비를 만드는데 관매도 여행을 가야만 이 진짜 굴비를 맛볼 기회가 생긴다. 과거 관매도에는 조기잡이 배가 많았다. 그래서 장산평 마을에는 아직도 조기를 절이던 간독이 남아 있다. 당시에는 굴비를 만들어 팔기도 했는데 그 시절 먹던 굴비 맛을 잊지 못하고 주민들은 지금껏 집집마다 굴비를 만든다. 관매도 사람들은 절인 조기를 긴 장대에 매달아 하늘 높은 곳에서 한두달씩 말린다. 태양빛과 3만평 솔숲의 솔향기를 머금고 온 해풍이 만들어준 관매도 굴비. 관매도 할머니들이 쑥을 뜯어다 넣고 손수 빚은 쑥막걸리와 함께 쭉쭉 찢어 먹는 굴비는 뭍에서 가져온 온갖 시름을 다 풀리게 한다. 관매도 사람들이 이 특별한 전통 굴비를 판매용으로도 만들어 내륙 사람들에게 맛볼 기회를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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