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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2 19:23 수정 : 2016.10.13 11:38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거문도 한가쿠 갈칫국

“못 가겠네 못 가겠네/ 놋닢 같은 갈치 뱃살 두고 나는 시집 못 가겠네.” 거문도의 가을은 ‘강강술래’ 메김소리 속 처녀가 좋아했던 갈치 철이다. 갈치는 노랗게 나락 익어갈 때 소금 뿌려 숯불구이로 먹는 맛이 최고다. 지금이 그때다. 갈치는 칼처럼 생겨 도어(刀漁)라 했고 영어로도 ‘cutlassfish’다. 그런데 어째서 칼치가 아니라 갈치일까. 옛날 “황해, 강원 이북에서는 칼치, 경기, 경북 이남에서는 갈치라 했다” 한다. 신라에서는 칼을 갈이라 했는데 권력의 향배에 따라 신라의 판도에 있던 지역 말이 표준어가 된 때문이다. 제주 바다에서 잡히던 갈치가 7월부터 11월까지는 거문도 해역에서 몸을 푼다.

“갈치는 절대 소금에 절여서 보관하면 안 돼.” 거문도 어판장에서 만난 수협 중매인의 충고다. 생선 좀 안다 하는 이들도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갈치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는 것이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 자반으로 먹던 습관이다. 갈치는 소금에 절여 오래 두면 수분과 기름기가 빠져 살이 퍽퍽해진다. 생물 그대로 보관해야 하는 이유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핏기가 있더라도 민물에 씻지 않고 밀봉해 보관하는 것이 좋다. 물에 씻으면 변질되기 쉽다. 갈치도 다른 생선들처럼 싱싱할 때 급랭을 하면 맛이 거의 변함없다. 하지만 좀 더 부드러운 맛을 느끼고 싶으면 손질한 갈치를 냉장보관 하는 것이 좋다. 거문도 황금수산 여주인은 갈치가 냉장고에서 5일, 김치냉장고에서는 10일까지도 선도가 유지된다고 귀띔한다.

갈치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제주 은갈치와 목포 먹갈치의 종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똑같은 갈치다. 잡는 방법에 따라 은갈치가 되기도 하고 먹갈치가 되기도 한다. 채낚기나 주낙(연승)의 낚시로 잡아 비늘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은갈치고 그물로 잡아 은비늘이 벗겨지고 검은빛을 띠면 먹갈치다. 또 은갈치도 제주 은갈치와 거문도 은갈치가 다른 종인 줄 아는 이들도 있다. 역시 같은 갈치다. 당연히 맛의 차이도 없다. 은갈치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브랜드가 아니라 포획 방법이다. 은갈치와 먹갈치가 그렇듯 같은 은갈치인데도 조업 방법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난다. 채낚기가 한길 위고 주낙은 그에 못 미친다. 그래서 가격 차이도 크다.

채낚기 배는 선상에서 산 갈치를 바로 잡아 올린다. 하지만 주낙 배는 수많은 바늘을 단 낚싯줄을 바다에 던져놨다가 일정 시간이 흐른 뒤 다시 거두러 간다. 잡힌 갈치가 죽은 채 바다에 잠겨 있다 나오는 것이다. 산 채로 잡느냐 바닷속에서 죽은 놈을 건지느냐가 맛의 차이를 결정한다. 주낙 갈치는 구울 때도 기름이 배어나오지 않는다. 기름기가 적으니 맛이 덜할 수밖에. 어떻게 구별할까. 채낚기 갈치는 진한 은빛에 통통하고 둥그스름하다. 주낙 갈치는 약간 회색빛이 돌며 체형도 납작하다.

거문도만의 갈치 요리는 한가쿠(엉겅퀴) 갈칫국이다. 된장을 풀고 한가쿠를 넣어 끓인 갈칫국은 약초향이 은은하다. 본래는 갈치와 한가쿠가 푹 녹도록 약한 불로 오래 끓였지만 지금은 삶아둔 한가쿠를 넣고 푸르르 끓여낸다. 그래도 갈칫국 한 그릇이면 밤새 조업하느라 뱃멀미에 시달린 선원들의 거친 속이 편안해진다. 어떤 국보다 술 마신 다음날 해장도 빠르다. 강장에 좋아 링컨 대통령도 즐겼다는 엉겅퀴와 성질이 따뜻해서 소화기가 약한 사람에게도 부담 없는 갈치의 궁합이 딱 맞아떨어진 까닭이 아닐지. 이 가을, 세파에 찌든 속 풀러 여수 바다 건너 거문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강제윤/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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