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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4 19:41 수정 : 2017.01.04 20:23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전남 보길도 전복포

전복포. 강제윤 제공
전복은 껍질까지도 쓸모가 있다. 껍질은 나전칠기 재료는 물론 약재로도 쓰였다. <본초강목>에는 실명에 이를 수 있는 눈병까지 치료한다 했다. 그래서 전복 껍질을 석결명(石決明) 혹은 천리광(千里光)이라 한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삼국지의 주인공 조조도 전복을 즐겨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진시황뿐만 아니라 조조까지 전복 마니아였다니 전복이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고금이 같다. 지금은 양식 덕분에 흔해져 전복 라면까지 등장할 정도지만 씨알 굵은 것이나 자연산은 여전히 고가다. 예전에는 당연히 부와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나 먹던 귀물이었다. 제주를 비롯한 섬이나 해안 지방에서 전복이 수탈의 상징이기도 했던 것은 그 때문이다.

궁궐은 물론 왕실 종친들의 전복 공출 요구 때문에 제주에서는 뭍으로 탈출하는 남자들이 부지기수였다. 제주에는 본래 해녀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전복을 따는 해남(포작)도 있었다. 전복 공출의 가혹함을 피하려고 남자들이 제주를 탈출하는 일이 많아지자, 200년 동안이나 제주민들을 육지로 나가지 못하게 만든 출륙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었다. 세종 때의 제주 안무사 기건은 한겨울에도 공출을 위해 벌거벗은 채 전복을 따다 바치는 해녀들을 보고 가슴 아파 평생 전복을 먹지 않았다고도 한다.

정조시대 통영에서도 어민들은 선희궁에 소속된 관리들의 전복 공출에 시달렸다. 결국 어민들의 해원을 위해 70살이 넘은 월성정씨 부인이 천릿길을 걸어서 한성까지 올라가 격쟁(임금 행차 때 징이나 꽹과리를 쳐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것)을 울렸고 정조는 전복 공출을 면제해줬다. 전복으로 인한 폐단이 얼마나 컸던지 짐작할 수 있는 일화들이다.

요즈음 완도군은 전복 양식의 메카다. 전국 생산량의 80%나 산출된다. 적합한 수온이나 지형 조건도 있지만 전복의 먹이가 되는 해조류 생산량이 전국 생산량의 40%를 점할 정도로 완도에 해조류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전복은 양식이냐 자연산이냐의 구별이 큰 의미가 없다. 양식 전복 또한 자연산이 먹는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먹고 크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없이 풍부한 먹이를 먹고 자란 양식이 오히려 더 부드럽다. 어패류나 해조류는 자연산이냐 양식이냐 구분보다는 수질이 얼마나 깨끗한 곳에서 자라느냐가 관건이다.

완도군의 보길도 또한 전복 섬이다. 전복 라면의 전설이 시작된 곳도 보길도다. 전복 요리의 대명사는 전복회와 죽인데 아직도 양심 없이 희멀건 전복죽을 끓이는 곳이 있다. 하지만 전복죽은 내장을 쌀에 박박 문질러 푸른 물이 들게 한 뒤 끓여내야 제맛이다. 그밖에도 전복구이나 찜, 물회, 내장젓이나 간장조림 등도 대중적인 전복 요리법이다. 하지만 예부터 내려온 섬의 토속 전복요리법은 따로 있다. 전복포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전복포가 등장한다. <자산어보>는 전복을 복어(鰒魚)라 칭하면서 “그 살코기는 맛이 달아서 날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말려서 포를 만들어 먹는 방법이다. 그 장은 익혀 먹어도 좋고 젓을 담가 먹어도 좋으며 종기 치료에도 좋다”고 했다.

보길도에서도 중리, 백도리와 함께 통리마을에는 해녀들이 많이 살았다. 제주에서 물질 왔다가 눌러살게 된 해녀들도 있고 자생 해녀도 있었다. 통리 해녀들도 전복을 따다 생으로도 팔았지만 주문을 받으면 포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보길도에서는 말린 전복포를 숙복이라 한다. 전복은 내장을 따로 떼어낸 뒤 소금간질을 해서 이물질을 깨끗이 씻어낸다. 간질해서 삶은 것들은 변질이 거의 없다. 잘 씻은 전복을 끓는 물에 데친다. 색이 노랗게 변할 즈음 전복을 건져내 말린다. 전복은 볕에 말리면 안 된다. 그늘과 바람에 이삼일 정도 말리면 전복포가 완성된다. 전복도 홍합처럼 5개씩 꼬챙이에 끼워서 말리기도 하는데 이것을 전복오가재비라 한다. 전복의 영양분이 한껏 농축된 전복포의 맛은 담백하면서도 고소하다. 술꾼들에게 최고의 술안주인 동시에 최상의 보약이다.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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