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01 19:43
수정 : 2017.02.01 20:42
[ESC] 강제윤의 섬에서 맛난 밥상
도초도 감성돔젓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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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돔젓국. 강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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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차례상에 올랐던 굽거나 찐 생선으로 끓인 국을 남도 섬 지방에서는 젓국이라 부른다. 전남 도초도 불섬마을, 어느 식당 주인 할머니는 설 명절상에 올랐던 감성돔구이로 젓국을 끓인다. 서산, 태안 해안 지역에서 우럭젓국이 입소문 나면서 내륙 사람들도 마른 생선으로 끓이는 젓국의 깊은 맛을 알게 됐다. 생선은 말리면 아미노산이 풍부해져서 감칠맛이 더해진다. 하지만 젓국도 마른 생선을 날것으로 끓인 것보다는 한번 굽거나 쪄서 끓이면 그 풍미가 더욱 깊다. 그래서 섬 지방에서는 마른 생선을 익힌 뒤에 다시 끓여 먹는 젓국 요리법이 발달했다.
요즘은 건조기가 있어서 사철 생선을 말리지만 생선을 말리기 가장 좋은 계절은 습기 없고 볕 좋은 늦가을부터 겨울 동안이다. 이때 생선들은 대부분 월동을 위해 살을 찌운다. 당연히 이 무렵 말리는 생선이 더 맛있다. 예전에는 말린 생선을 보통 대나무로 만든 석작(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서 시렁에 올려 보관했다. 그러다 귀한 손님이라도 오면 꺼내 대접하곤 했다. 젓국을 끓일 때는 먼저 마른 생선을 굽거나 찐다. 국물은 쌀뜨물을 쓰는 것이 좋다. 뽀얀 국물이 우러나도록 30분 이상 푹 끓인 다음에 양념을 한다. 고추, 마늘, 양파, 대파 등을 넣고 5분가량 더 끓인 뒤 밥상에 올린다. 거기에 참깨와 참기름 한 방울도 고명처럼 얹는다. 곰국처럼 뽀얀 감성돔젓국, 국물 한 수저를 뜨자 치즈라도 넣은 것처럼 고소한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한번 익혔던 생선을 다시 끓인 까닭에 비린 맛도 전혀 없다.
할머니는 도초도 외남리가 고향이다. 도초에 나서 도초로 시집와 평생 섬에서만 살았다. 5살 위 남편은 같은 동네 총각이었다. 18살 때부터 연애를 했다. 처녀는 도초도에서 학교를 다녔고 총각은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방학 때 고향에 온 총각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고 “상당히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음을 빼앗겼다. 처녀가 청년을 따라다니며 같이 놀던 어느 날, 함께 고갯길을 넘어가는데 총각이 처녀의 팔을 잡았다. “거기 앉아봐, 할 말 있어.” 둘은 살짝 떨어져 앉았다. “나한테는 동생도 없고 그래서 외로우니 에스동생(의남매) 해.” 총각이 말을 건넸다. 하지만 처녀는 당돌하게 제안을 거절했다. “동생은 무슨 동생. 연애나 하면 되지.” 그렇게 4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는데 스물둘, 새댁이 어느새 노인이 돼버렸다. 하지만 나이가 칠십인데도 할머니는 “연애한 이야기만 나오면 아직도 열이 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돌아보니 연애 시절이 제일 행복했다. “결혼한 뒤는요?” 나그네가 짓궂게 묻자 돌아온 할머니의 대답. “결혼하자마자 고난이었지.”
할머니는 자식들 키우기 위해 오랫동안 도초도에서 식당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 곧 접을 생각이다. 칠순이 되면서 더는 일을 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을 위해서만 살 생각을 굳혔다. “돈 더 벌어서 머 하겠소. 팔십 넘으면 돈이 있어도 쓰지도 못할 텐데.”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남은 십년이 귀중하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움직일 수 있을 때 진짜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계기가 있었다. 여든다섯 먹은 언니가 형부로부터 약간의 현금 유산을 받았는데 돈이 있어도 쓸 데가 없다고 하소연하더란다. “어디 걸어 다니기도 힘드니 옷 입고 뽐내고 다닐 수도 없고.” 나이가 들수록 돈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심심하면 책도 읽고 민요도 배우러 다니며” 산다. “숨을 길게 빼고 목청껏 부를 수 있는 게 민요여.” 민요를 힘껏 부르고 나면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해 일가를 이루었고, 영감은 먼저 이승을 떴으니 돌고 돌아 다시 홀로 남은 할머니는 가족의 굴레를 벗고 비로소 자유인이 됐다.
강제윤 시인·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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