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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알리는 11살, 하루종일 고철을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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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11살 알리는 고철을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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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는 11살, 초등학교 3학년이다. 집안이 가난한데다 집마저 파괴되어 스스로 돈을 벌러 불발탄이 깔린 폐허터를 헤멘다. 하루종일 고철을 모으면 천오백 원 정도를 번다.
“고철을 모아 오늘 번 것으로는 빵을 사고, 내일은 공책을 살 거예요.
이스라엘과 그 편에 선 사람들에게 제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거예요. ”
마드라싸 무스따끄발(미래 학교)은 흔적조차 없다.
망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선 교사 아흐마드(38)에게 물었다.
이스라엘은 왜 학교를 폭격했을까요? 이곳에 헤즈볼라가 있었나요?
“우리도 이스라엘의 답변을 듣고 싶습니다.
레바논 남부에서는 학교도, 축구 골대도, 아이도, 가로수도, 모두 헤즈볼라입니다.
그들은 미래를 파괴했습니다. 우리는 천막을 치고라도 아이들을 가르칠 것입니다.”
폭격지마다 붉은 천에 ‘Made in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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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Made in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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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에 나선 레바논 주민들은 거대한 폭격지마다 붉은 천에 ‘Made in USA’를 새겨놓았다. 재건작업을 하던 포크레인 운전기사 이쌈(45)은 먼지 속을 헤치고 달려와 소리쳤다. “우리 마을을 파괴한 미국의 첨단 미사일이 영국공항을 거쳐 이스라엘에 긴급 제공된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류 앞에 폭탄을 던지는 나라입니다. 팔레스타인을 보십시오. 이라크를 보십시오. 레바논을 보십시오. 세계 폭격현장의 배후에 미국이 빠진 게 있나 보십시오. 이 현장들이 코카콜라보다 더 유명한 미국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레바논 주민들은 UN의 즉시휴전결정을 반대하며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을 지원하던 미국의 모습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는 듯 싶었다. 무엇보다 전쟁중에 베이루트를 방문한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가 이스라엘의 ‘폭격중지’를 요청하는 레바논 정부의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 뒤 쿠알라룸프로 날아가 만찬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한 그 가증스러운 모습을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거라며 분개했다. 잿빛먼지 날리는 처참한 폭격지의 폐허터마다 세워진 붉은 색의 ‘Made in USA’는, 강렬한 대비색만큼이나 강렬한 레바논주민들의 분노와 야유를 담은, 21세기 설치미술의 걸작처럼만 보였다.
글 사진/ 박노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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