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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0 02:02 수정 : 2006.10.10 02:21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사우산 파르하트

“알 함두릴라! 알 함두릴라!”

가지예 마을의 오십 명이 사는 연립주택도 폭격을 당해 아이와 여자들이 죽었다. “농사짓고 사는 이 오지마을의 주택을 왜 폭격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우산 파르하트(39) 여사는 물도 나오지 않고 식량도 파묻혀 점심도 대접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한다. 자신은 시아파 여인이기 때문에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할 수 없다며 카메라를 피하다가, 광화문에서 <레바논 살리기> 캠페인을 하고 있는 사진들을 보여주자 눈물을 흘리며 “알 함두릴라! 알 함두릴라!” 감사기도를 드리더니 “이 사진을 꼭 찍어서 전해주세요. 우리는 홀로 고립되어 이 세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 먼 쿠리아에서 어떻게... 이 먼 오지 마을까지 보내주시다니 이미 우리 마을 사람들은 무너진 집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이 열 번 백 번 때려도 무너질 수 없는 평화의 집을요!” 하면서 사진에 입을 맞추었다.

“누가 평화입니까?”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누가 평화입니까?

기원 전 1800년에 세워진 유서깊은 페니키아 시대의 도시국가 수르(티레)도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해상봉쇄로 고기잡이마저 나갈 수 없는 어부들과 전쟁으로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은 그물을 정리하고 있었다. “지금 이스라엘은 재침공할 군대와 무기를 정비하고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그물을 정비합니다. 누가 평화입니까?”


박노해 시인은?

박노해 시인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파괴된 레바논을 최근 박노해 시인이 다녀왔다. 박 시인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연재한다.

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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