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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0 02:08 수정 : 2006.10.10 02:17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이스마일 사이에흐

먹고 살만한 자가 힘센 강자에 굽실거리는 것은 죄악입니다

레바논 북부 바알벡으로 가는 고원지대에서 두르즈교 노인 이스마일 사이에흐(75)를 만났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쿠리아라고 대답했더니, “좌누비아(남한이냐)? 샤말리아(북한이냐)?”라고 묻는다 쿠리아 좌누비아라고 말하는 순간 표정이 굳는다. “좌누비아는 미국과 친구로 문제 있다. 이스라엘 침공에도 당신들의 대통령과 정부는 침묵으로 동조하지 않았느냐.”며 삿대질을 한다. 뜨거운 샤이에 설탕을 넣어주던 노인은 나직한 음성으로 “살아남는다는 것, 먹고 산다는 것은 신성한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건 거짓말을 하건 배고픈 자의 짓은 비록 나쁘지만 다 이해되고 하느님도 용서합니다. 하지만 먹고 살만한 자가 힘센 강자와 친구하고 굽실거리는 것은 죄악입니다. 내가 기른 이 사과와 토마토는 크지만 단단하고 달콤합니다. 6개월은 눈 속에서 6개월은 태양 아래서 토마토와 사과는 정직하게 자기 길을 갔고 자기 심장을 지녔습니다. 자기 심장이 하는 말을 입으로 말하지 못하고, 자기 영혼이 아는 길을 두 발로 가지 못하는 자는 두 배의 불행입니다. 쿠리아는 부자가 되면서 불행해지는 나라입니다. 나쁜 처세술을 배웠습니다.” 위엄 서린 고향 할아버지 앞에 무릎 꿇린 심정으로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 나는 레바논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반복되는 이 같은 꾸짖음에 이라크 파병과 레바논 전쟁 이후 중동의 민심이 코리아에서 무섭게 멀어져가고 있음을 절감해야 했다. 어디 중동뿐일까. 한국 전자제품과 휴대폰과 자동차를 열배 백배 판다고 해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간단치 않은 민심이 있는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가져간 <세이브 레바논> 평화 뱃지를 달아드렸다. “예언자들이 살아있는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샤이르 박도 돈과 권력과 무기 앞에 침묵하지 않는 예언자의 길을 가십시오. 난 얼마나 살지 모르지만 이 평화의 뱃지를 놓고 매일 기도 중에 쿠리아의 평화의 친구들과 샤이르 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할아버지는 포도와 자두를 씻어 권하면서 과일들을 한아름 싸주시면서 몸조심하라고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손을 흔든다.

가진 게 가벼우면 행복은 묵직해지는 법.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아부 라비

양을 치며 유목하는 베두인 가족을 만났다. 아부 라비(49)는 “이스라엘이 아무리 폭격해도 내 천막이야 양 두 마리만 있으면 다시 새끼를 낳는다. 이스라엘은 총과 폭탄으로 강하지만 난 내 몸과 삶으로 강하다.”

“왜 남의 땅을 침공하나? 땅이 그렇게 중요한가? 사람에게 교육과 머리가 그렇게 중요한가? 평생 괴롭게 공부해서 기껏 탐욕과 악행으로 증오의 족쇄를 차고 스스로 행복을 죽이다니!”

“샤이르 박은 언제든 내 천막의 친구로 환영합니다. 누추해도 맑은 햇볕이 있고, 신선한 공기가 있고, 시원한 자유가 있습니다. 언제든 와서 시를 쓰십시오.” 하면서 이 계절에는 내가 어디에 있을 거고 다음 계절은 어디에 있을 테니 이리로 찾아오라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지도를 그려준다. 갓 짠 양젖과 달콤한 샤이를 끓여주며 “건강한 내 딸들도 있습니다.”라며 껄걸 웃는다.

가진 게 가벼우면 행복은 묵직해지는 법.

박노해 시인은?

박노해 시인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파괴된 레바논을 최근 박노해 시인이 다녀왔다. 박 시인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연재한다.

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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