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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3 09:42 수정 : 2006.10.13 13:50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탱크 위의 헤즈볼라 깃발

탱크 위에서 헤즈볼라 깃발 흔드는 남매

빈트 주베일 가는 길에 탱크 위에서 깃발을 흔드는 남매가 있었다.

알리(10)는 헤즈볼라 깃발을 들고 가디르(7)는 레바논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왜 탱크 위에서 그러고 있니?

“죽은 친구들이 보라구요.”

친구들이 많이 죽었니?

“피난 갔다 오늘 처음 집에 왔는데요, 우리 집도 학교도 마을도 다 지워졌어요.

죽은 친구들 생각이 나서 탱크 위에서 깃발 기도하는 거에요.”

뭐라고 기도했니?

“사라, 후세인, 하난, 라박, 후라야! 편히 잠들어.

폭탄 소리에도 깨어나지 말고, 아프다고 울지 말고...”

“내가 죽지 않고 자라면 이스라엘 탱크마다 레바논 국기와 헤즈볼라 국기가

펄럭이게 할거야, 평화가 올 때까지 날 지켜봐 주렴...”

두 아이의 목소리는 울음으로 변하고 있었다.

산 자들은 죽은 자의 몫까지 못다 한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후세인 질 잘리

후세인 질 잘리(72) 할아버지는 평생 모은 돈으로 새집을 지었는데, 완전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딸과 손녀와 두 아들이 새로 지은 집 안에서 죽고 말았다. 폐허더미에서 찾아낸 주검은 불타지도 않았는데 구두약을 칠한 것처럼 시커멓게 변한 모습이었다며, 화학탄을 사용했음이 틀림없다고 분노한다.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집속탄과 백린탄, 화학탄을 사용했다는 폭로가 이스라엘 참전 병사들로부터 연달아 제보되고 있다. 할아버지는 희생된 자녀 의 포스터를 차에 붙이고 있었다. 마을의 헤즈볼라 청년들이 만들어주었단다. 결코 개인의 책임이 아닌 불행과 재앙을 개인의 심장 위에 얹게 버려두는 것은 인간을 두 번 죽이는 행위이기에. 개인의 고통과 슬픔은 공동체의 고통과 슬픔으로 공유될 때, 죽은 자는 부활하여 눈감을 수 있고 산 자들은 죽은 자의 몫까지 못다 한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나눔은 곧 치유이기에.

산자들의 성 금요일 예배 “순교자들은 온몸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했으니…”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살아남은자들의 성 금요일 예배

국경 부근 빈트 주베일에 들어선 순간,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백 채의 집과 건물이 일제히 무너진 참혹한 유령의 도시였다. 폐허의 거리를 한참을 걸어도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마을과 마을들.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도 아니고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끔찍한 폭격을 퍼부을 수가 있을까. 주민 50여 명이 죽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휴전 직후부터 20일 동안 산더미처럼 쌓인 폐허더미를 치워냈고, 어제서야 겨우 길이 트여 물과 생필품을 구할 수 있었단다. 주민들은 외국인으로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온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눈물로 반기며 몰려와 고립된 공포의 시간들을 털어놓는다.

오늘은 聖 금요일. 빈트 주베일의 파괴된 모스크에서 살아남은 주민들이 처음으로 모여 예배를 드린다. 이맘의 설교는 흐느끼는 듯 말을 잇지 못하고 떨렸다.

“이 어려움을 우리의 믿음과 눈물과 땀으로 극복하자. 죽어간 주민들과 전사들의 신성한 피로 이겨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그들 순교자들은 이미 온몸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 했으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그들에게 하늘의 대가가 있으리라.” 글/사진 박노해 시인

박노해 시인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파괴된 레바논을 최근 박노해 시인이 다녀왔다. 박 시인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연재한다.

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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