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10.13 18:59 수정 : 2006.10.13 19:14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 사미야 왜 울고 있니?

사미야 왜 울고 있니? “오빠는 숨진 헤즈볼라 전사”

빈트 주베일에서 완파되지 않은 몇 채 안 되는 건물에서 깨진 가게를 치우며 홀로 울고 있는 사미야(16)를 만났다. 폐허가 된 고향에 홀로 걸어들어와 일주일째 잔해를 치우고 있단다.

사미야 왜 울고 있니? 하고 물으니

“전깃불도 없는 밤중에 혼자서 부서진 가게를 치우는 건 힘들지 않은데요, 불쑥불쑥 오빠 생각이 나서요. 오빠 두 명이 마을을 지키다 전사했어요.” 다시 얼굴을 가리며 흐느끼는 것이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사미야는 나중에 학교 졸업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니? 하고 물었더니 “간호사가 될 거에요. 이스라엘 총에 맞은 오빠가 몇 시간 동안 피를 흘리다 죽었다고 전해들었어요. 부상당한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요. 샤이르 박, 제 오빠와 헤즈볼라 전사 묘지가 이 위에 있는데 한번 찾아봐 주실래요.”

“아무도 헤즈볼라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 빈트 주베일 마을의 공동묘지

드넓은 마을 묘지에도 폭탄이 떨어져 있었다. 이스라엘은 죽은 사람들조차 두려웠던 걸까. 묘지에서 만난 발랄 딸립(30)은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빈트 주베일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 집은 반쯤 파괴되었지만 저희 집으로 와서 머무십시오. 이스라엘은 레바논을 점령하기 위해 빈트 주베일로 지상군을 진격시켰는데 우리 마을 헤즈볼라 청년들이 온몸으로 막아내 물리쳤습니다. 이곳에서 이스라엘 탱크가 여러 대 파괴되었고, 이스라엘 병사들이 많이 죽자 그들은 그 좌절감 때문에 밤 중에 전투기로 폭격하면서 온 마을을 폐허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럼 헤즈볼라 때문에 빈트 주베일이 이토록 폐허의 지옥이 된 것이냐고 묻자 “여기는 과거 오랫동안 이스라엘 점령지였습니다. 이곳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가져온 것이 헤즈볼라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마을은 재건에 나서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헤즈볼라 때문에 이번에 파괴되었다 하더라도 주민 어느 한 사람도 헤즈볼라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헤즈볼라는 마을 건물에 숨어서 전투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 집이 파괴될까 봐 몸을 숨길 것도 없는 저 언덕 위에서 전투하다가 죽어간 것입니다. 참 잘생기고 똑똑하고 선한 친구들이었는데...” 하면서 눈이 젖어들기 시작했다. 헤즈볼라 전사 14명이 묻힌 묘지를 찾았다. 흙더미 한구석에 1미터 폭으로 시멘트를 발라 길게 만든 합동 묘지였다. 사진조차 없어 시멘트 위에 못으로 이름을 새겨놓았다. 유일하게 사진이 놓인 묘지를 찾아 나는 먹먹한 가슴으로 오래오래 서 있었다.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사라져간 청년들. 가족도 주민들도 다 돌아오지 않아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시멘트 무덤. 첨단탱크를 앞세운 수천 명의 이스라엘 지상군 앞에서 빈약한 총 한 자루를 들고 자신의 온 몸을 던져 그들의 침범을 끝내 저지하며 레바논과 인류의 양심을 지킨 초라한 무덤 속의 젊은 그들.

이스라엘 폭격은 가난한 민중들의 집을 향했다

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보고 - 가난한 마을의 폭격

빈트 주베일은 물론 인근 마을의 거의 모든 집들이 파괴되었어도 절묘하게 폭격을 피해 말짱한 집들이 있었다. 고급 빌라들이었다. 이스라엘은 고급빌라들만 절묘하게 가려가며 폭격하지 않았다. 헤즈볼라는 주로 중산층과 가난한 사람들이고 가난한 민중 속에 있기에 잘 사는 집들은 폭격하지 않았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레바논 북부 기독교 지역과 남부 시아파 무슬림 지역을 가려서 폭격하고, 기독교 마을과 무슬림 마을을 가려서 폭격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가려서 폭격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레바논의 절대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시아파 무슬림 민중의 집과 마을만을 철저히 폭격함해 주민들과 헤즈볼라를 분리고립시키고, 내전을 부추겨, 이라크처럼 레바논을 폭력의 불구덩이에 빠뜨려 친미정부를 세우겠다는 저의였음이 분명해 보였다. 글/사진 박노해 시인

박노해 시인은?

박노해 시인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파괴된 레바논을 최근 박노해 시인이 다녀왔다. 박 시인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연재한다.

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박노해 시인의 레바논 현지보고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