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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9 11:26 수정 : 2006.10.19 11:26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스로빈 마을의 모스크

언덕 위 모스크는 피 눈물을 흘렸다

스로빈 마을에서 지금까지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를 보았다. 흰색과 옥색 옷을 단아하게 입고 절경의 언덕 위에 곱게 선 작고 소박한 모스크였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모스크는 처참한 총상으로 피를 흘리며 하늘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서 있었다. 이 작은 마을의 거의 모든 집이 폭격 되었고 140여 채가 파괴되었다. 3명이 죽고 30명이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장인 다르위시 아흐마드(46)는 마을에 들어선 나를 경계의 눈초리로 지켜보며, 무슨 목적으로 왔느냐고 마을 청년들과 함께 심문하기 시작했다.

쿠리아 좌누비아(남한)라고 밝히자, 나를 에워싼 그들의 심문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서로의 진정이 통하자 그들은 정중하게 사과하며 나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전쟁 한 달 전에 이스라엘의 첩자들이 외신기자와 국제 NGO를 사칭하며 이 마을을 방문해, 며칠에 걸쳐 집주인의 직업과 정치성향까지 샅샅이 조사하고 촬영해가며 특수 지도를 작성해 이스라엘 군에 넘겼고 그 지도에 따라 정밀한 선별 폭격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민간인 학살과 마을폭격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한 전쟁이었다고 치를 떨었다.

아흐마드는 오지에 위치한 우리 마을은 너무 작고 가난해서 마을 재건에 손도 쓰지 못하고 있다며 마을 공동 모임장소이자 기도처인 모스크마저 복구할 수 없어, 마을 이장인 자신의 무력감을 자책하며 잠 못 이루는 나날이라며 물기 젖은 목소리로 토로해왔다.

나는 이 작고 가난한 마을 주민들이 서로 모여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재건의 힘을 길어올릴 모스크라도 우선 복구할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었지만, 내가 가져간 성금은 턱없이 작았기에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파괴하지만 우리는 건설합니다”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하나위 마을 주유소 하산 파키르

까나의 하나위 마을 주유소 주인 하산 파키르(49)씨는 4일간 7번에 걸쳐 주변 주유소 모두를 폭격했다며 분개했다. “이스라엘은 파괴하지만 우리는 건설합니다. 그들이 다시 폭격해도 우리는 다시 재건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세 번, 네 번 폭격하면 우리는 네 번, 다섯 번 다시 지을 것입니다. 그들 파괴자 보다 우리가 한 번 더 재건할 때, 그것은 우리의 승리이고 인류 정의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아이들의 무전기 장난 “헤즈볼라여 승리하라!”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하이즈와 친구들

폐허 더미에서 하이즈(12)와 친구들이 장난감 무전기로 뭔가를 말하면서 V자를 그려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이니? 물었더니

“승리의 표시예요. 우리의 승리는 파괴를 막고 친구의 죽음을 막아요.”

장난감 무전기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니?

“헤즈볼라 헤즈볼라 승리하라! 이스라엘 탱크가 다시 쳐들어온다! 헤즈볼라, 하산 나스랄라, 승리하라! 승리! 승리!” 아이들은 파괴된 마을 집들에서 끊어진 전기선을 모아 불에 태워 구리선을 팔아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다며 다시 한번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였다.

12살 소년의 신앙 “헤즈볼라의 앰뷸런스 응급차 기사”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12살 소년의 신앙

검게 불탄 폐허 속에서 한 소년이 기름때 묻은 까만 손으로 고철을 모으다가 나에게 V자를 그려 보였다.

누구의 승리를 바라니?

“헤즈볼라에게 항상 승리가 함께 하기를 바라는 거에요.”

왜 헤즈볼라가 승리해야 하지?

“헤즈볼라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오고 희망을 심어주기 때문에요. 강자의 무기 앞에서도 머리를 쳐들고 있는 레바논이기를!”

너에게 평화가 뭐지?

“사랑, 믿음... 협력이에요. 돈만 많고 사랑이 없으면 평화가 아니지요. 성공했으나 신뢰가 없으면 열매 없는 올리브 나무에요. 많이 배우고 똑똑한데 협력을 못하면 행복이 없지요.”

무함마드는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니?

“앰뷸런스 응급차 기사가 되고 싶어요.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요. 피 흘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살릴 수 있었는데 우리 마을이 시골이라... 응급차만 있었어도...”

너 그런 생각 품고 있다 이스라엘이 침공하면 어떡하지?

“제가 조금만 더 크면 헤즈볼라 전사가 되어 총을 들고 싸워야죠.”

그러다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내 동생과 친구들의 생명을 구하는 순교니까요. 죄 없이 죽은 자와 정의를 위해 죽은 자는 하느님 옆에서 빛나지요. 순교는 삶의 영광이에요.”

누가 그런 걸 가르쳐주니? 학교에서 문답식으로 교육받니?

“학교에서 어떻게 그런 걸 배워요. 이건 제 생각이고 제 신앙이에요. 제 나이가 12살인데요. 이스라엘이 우리나라 땅에서 물러가지 않으면 그들은 또 폭격하고 죽일 거잖아요. 그러면 친구들도 죽고 저도 죽을 건데요. 난 내 눈으로 다 봤어요. 이스라엘과 미국이 무슨 짓을 하는지...” 글/사진 박노해 시인

박노해 시인은?

박노해 시인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파괴된 레바논을 최근 박노해 시인이 다녀왔다. 박 시인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연재한다.

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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