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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0 11:27 수정 : 2006.10.20 11:27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까나마을 입구 추모 광장

영정 속 아이들은 환한 미소로 울부짖고 있었다

마침내 까나 마을로 들어섰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에서 까나 어린이 대학살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라는 포스터에 박힌 글귀처럼 이스라엘과 미국의 전폭기는 까나 아이들과 전쟁을 했고, 그들은 결국 인류의 두 눈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까나 마을은 65명의 주민이 사상당했고 그 중 35명이 아이들이었다.

까나마을 입구 추모 광장에는 학살당한 아이들의 사진이 환한 미소로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베니다 판에 매직글씨로 쓰인 아이들 이름과 사진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기도를 했다. 개인 카메라 한 대 없는 까나 마을에서 이 아이들은 가장 기쁘고 좋은 날, 제일 멋지게 차려입고 멀리 떨어진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으리라. 그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다니. 가장 행복한 순간의 사진이 가장 처참한 죽음의 영정사진이 되리라 그 누가 알았을까?

너는 꿈을 꾸며 잠이 들었구나

그리고 영영 깨어나지 않으리

그러나 너는 잠든 세상을 깨우네

너, 까나의 아이야

너는 백향목처럼 강하고

올리브 열매처럼 새롭게 피어나리

까나 걸스카우트 대원들의 추모기도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까나 걸스카우트

까나 걸스카우트 대원들이 찾아와 추모기도를 올린다.

까나의 희생자들이 걸어간 순교의 길을 우리가 마무리하자며, 평화의 저항을 다짐하기 위해 꽃과 촛불을 바친다.

여러분에게 평화의 저항이란 무엇입니까?

“다히야에요. 서로 누구나 인사를 나누는 것이죠. 옳지 않은 길로 가려는 저 자신을 이겨내고, 옳지 않은 일을 하려는 강자에 저항하는 것이에요. 이 땅에 전쟁이 없어지고, 이스라엘이 우리나라 영토에서 물러가는 것이 우리의 평화입니다.”

“미국과 서구 뉴스를 그대로 믿지 말아줘”

박노해의 레반논 보고 -제나

유난히 슬픈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제나(14)에게 물었다.

같은 또래의 이스라엘 친구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니?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강하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돈과 무기로 우리를 압박하고 침공해도, 우리는 하느님께 의지하고 나 자신에게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오늘 우리의 추모 다짐처럼.”

쿠리아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전해줄까?

“미국과 서구 뉴스를 그대로 믿지 말아줘. 레바논의 진실에 대해서는 <알 마나르> 헤즈볼라 방송을 봐주면 좋겠어. 샤이르 박은 레바논을 다녀보셨으니 제 말을 이해하시리라고 생각해요.”

죽은 친구들 앞에서 무슨 기도를 올렸는지 들려줄 수 있겠니?

“친구야. 너는 여기 잠들었어도 내 가슴 속에 살아있어. 내가 약해지고 내 마음이 잠들 때마다 너는 나를 깨워줘야 해. 나 또한 침묵을 깨우는 사람이 될 거야.”

폭격 맞은 지하실에서 아이들은 피지 못한 꽃처럼 파묻혔다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까나 마을의 피신처

폭탄이 떨어지는 까나 마을에서 피난을 떠나지 않은 어른들과 아이들은 이 건물 지하실로 피신을 했다. 마르와 힌 사람들처럼 피난길 위에서 죽느니, 마을에서 죽으면 내가 누군지는 알아 볼 것이다, 낯선 길 위에서 죽으면 내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을까, 그러면 생사확인도 못 한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지 않겠는가? 라는 심정으로 이들은 마을에서 가장 크고 안전한 이 집 지하실로 모여든 것이다.

그러나 열감지 장치가 달린 이스라엘의 첨단 무기들은 정확하게 이 건물 지하실까지 폭격했고, 까나 아이들은 피지도 못한 꽃처럼 파묻히고 말았다. 나는 주민들이 만류했지만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 지하실로 숨을 죽이며 걸어 들어갔다. 지하실 폐허더미 속에는 죽은 아이들의 속옷과 슬리퍼와 인형들이 잿더미를 둘러쓴 채 그날 그 순간의 악몽을 소리 없이 절규하고 있었다.

박노해 시인은?

박노해 시인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파괴된 레바논을 최근 박노해 시인이 다녀왔다. 박 시인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연재한다.

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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