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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4 10:28 수정 : 2006.10.24 10:28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사나 샬훕

13살의 소녀 가장 샬훕 “울지 않고 살아갈 거예요”

유난히 말이 없고 깊은 눈매로, 온몸에서 슬픔이 흘러내리는 소녀가 있었다.

사나 샬훕(13)은 엄마와 아빠가 죽고 두 오빠와 언니를 잃었다. 살아남은 어린 동생 두 명을 데리고 소녀가장으로 일생을 살아내야 한다. 사나 샬훕은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먼 곳에서 까나를 찾아주시고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해 주심을 감사드려요. 쿠리아의 친구들에게 전해주세요. 사랑과 평화의 마음을 보내준 것에 감사드리며, 저는 두 동생과 함께 울지 않고 살아갈 거에요. 우리는 인내심이 많은 우리나라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과 평화를 위해 우리의 피를 바쳤어요.
아빠, 엄마, 울라, 알리, 유스프, 순교의 축복이 있기를...
1996 까나 - 2006 까나
까나야, 너 어디로...”

코리아의 선한 벗들이 까나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합니다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나눔문화 현수막

나는 한국의 나눔문화에서 보내준 현수막을 휑한 시멘트 벽에 걸어드렸다.

레바논의 폐허 앞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주민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KOREA의 선한 벗들이
까나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며
여기 작은 평화의 마음을 전합니다.

현수막이 걸리자 까나 마을 주민들은 현수막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죽은 아이들은 말없이 잠들어 있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울고… 그러나,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까나 마을 아이들

까나 마을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살아남은 까나의 아이들과 함께 죽어간 친구들을 위해 추모기도를 올렸다. 까나 아이들의 기도의 합창은 점점 울음소리로 변해갔다. 죽은 까나 아이들은 말없이 잠들어 있고, 살아남은 아이들은 울고 있지만, 그러나 까나 아이들은 이 세상 그 어떤 전투기와 폭탄보다 강하리라.

상처만큼 깊어진 정신의 키를 키워가리라

박노해의 레바논 보고 -까나 마을

예수가 까나 마을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붉은 포도주로 바꾸는 첫 기적을 베풀었다는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이스라엘은 아이들의 눈물을 붉은 피로 바꾸었다. 전깃불도 없는 어두운 까나의 하늘에는 죽어간 아이들의 눈망울처럼 별들이 총총했다. 나는 마을 지도자들과 함께 이 자리에 세워질 추모기념공간 2층에 <까나 어린이 평화나눔 도서관>을 세우기로 하고 작은 성금을 전달했다. 머지않아 레바논 주민들과 세계인의 평화순례지가 될 이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상처만큼 깊어진 정신의 키를 키워가리라. 까나 아이들은 강인한 올리브나무처럼 자라나 총과 폭탄보다 강한 평화의 씨앗을 심어가리라. 글/ 사진 박노해 시인 <끝>

박노해 시인은?

박노해 시인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파괴된 레바논을 최근 박노해 시인이 다녀왔다. 박 시인이 현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연재한다.

시인 박노해(48)씨는 1983년 동인집 <시와 경제>를 통해 등단했다. 1984년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80년대 노동문학의 총아로 떠올랐다.

1991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1998년 석방됐다. 시집으로 <참된 시작>, 산문집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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