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인의 책탐책틈
없는 사람최정화 지음/은행나무(2016) 사설 용역업자쯤 될 ‘이부’가 작전을 짜고 그 작전에 따라 ‘무오’가 잠입한 ‘모리 주식회사’에서 쌍용자동차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쌍용자동차뿐이 아니다. 한진중공업부터 최근의 기아자동차까지. 폐쇄된 공장에서, 거리에서, 고공 크레인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오랜 시간을 여전히 고독하고 절박하게 싸우고 있다. 마음으로 동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자주 잊기도 했던 그 싸움들 속으로, 소설은 무오와 함께 잠입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미쳐버릴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운송회사의 잡역부 일을 하는 무오를 끌어들이면서 이부는 자신의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최종 목표는 부당해고에 대항하는 노조의 싸움을 중지시키는 데 있겠지만, 그 목표를 위해 그가 타격하는 지점은 인간의 불안이다. 노조에 잠입한 누군가가 내부 정보를 빼돌리고 있다, 감시와 미행이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다,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부가 좌표로 찍은 노조의 핵심인물 ‘이자희’는 결국 불안과 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다. 단전 고지서를 가져 온 수위를 감시자로 착각하고 소화기로 쳐 죽이는 에필로그는 참담하다. 에필로그를 결말로 이해한다면, 이부의 작전은 성공했다. 불안을 공격하면 싸움을 그만두게 할 수 있다. “굴복과 체념, 일상으로의 복귀. 그리하여 모두의 안전.” 그러나 에필로그를 덧붙여진 것으로 읽는다면 이야기의 끝은 다른 데 있다. 70일간의 ‘옥쇄투쟁’의 막바지, 소설은 다시 쌍용자동차의 농성 현장을 환기시킨다. 진압과 침탈이 예정된 날, 무오는 농성장을 빠져나오기 위해 옥상에서 헬기를 기다린다. 헬기는 오지 않았다. “농성대원 틈에서 함께 생활하며 의심받을 짓을 하고 의심받고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는 자신의 정체를 들키는 것, 그래서 분란을 일으키는 것.” 이부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무오는 이용가치가 다하자 버림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끝에서 다시 시작된다. 무너지고 흔들리는 이자희에 분노하고, 농성장의 그들과 동료가 되고 싶어했던, 그러나 결국 이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무오의 그 다음 이야기. 이부의 작전대로 움직이면서도 참을 수 없이 폭발했던 위반의 감정들과 무오는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그 위반의 순간들이야말로 이부의 계획이 미칠 수 없는 이탈의 지점이 아니었을까.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현장의 무오로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 것이다. ‘없는 사람’이란 누구일까. 영웅적으로 시위를 주도하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불안에 시달리며 살인자가 된 이자희일까. 사건 뒤에 숨어 사건을 만들었던 보이지 않는 손, 이부일까. 아니면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지시대로 움직이다 결국 버림받은 무오일까. 읽는 내내 암담했으나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싶어지지는 않았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묻기 시작한 무오를 ‘아직’, ‘없는 사람’으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안전하지 않으며,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므로. 서영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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