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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12 19:03 수정 : 2016.11.01 10:49

[토요판] 백기영의 미술 교차로
(3) 테러리스트 정상회담

네덜란드 출신의 작가 요나스 스탈은 국가 및 종교 간 갈등의 원인과 이를 둘러싼 내전, 테러 등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행사인 <테러리스트 정상회담>을 2012년 제7회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사진은 당시 행사장 조감도. 요나스 스탈 누리집 갈무리

201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한 극장에서 <리처드 맥비프> 공연이 펼쳐졌다. 이 작품은 2007년 4월16일 3시간 만에 61명(사망 32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가 2006년 가을 학기 과제로 쓴 희곡이다. 개념미술가 요나스 스탈은 로테르담시 극단과 함께 그의 희곡을 그대로 재연해 두 차례 공연했는데, 한 번은 관객들과 어울려 무대 위에서, 한 번은 객석에서 진행했다. 두 번의 공연 사이에 요나스 스탈은 관람객과의 대화 시간을 갖고 공연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조승희는 사건이 일어나기 한 해 전 쓴 이 희곡을 바탕으로 단편영화를 제작한 적도 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그의 영상을 보면, 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한 남자 맥비프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맥비프는 양아들 존과 함께 아내 수와 살았다. 맥비프는 보트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양아들 존에게 끝없이 모욕을 당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듣는다. 존은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것도 맥비프의 탓이라고 돌리고 그가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맥비프는 이 모욕을 견디면서 아내 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아내조차도 그를 받아주지 않고 아들만 감쌌다. 결국 맥비프는 자신을 향해 욕설을 계속해대는 존을 후려치고 만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테러리스트 정상회담’ 행사 장면. 요나스 스탈 누리집 갈무리
‘국가 없는 정치 운동’ 확산에 주력

8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가난한 조승희는 소극적이고 비사회적인 성격 탓에 고통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 속 맥비프는 평소 발음 문제로 놀림을 당하고 외국인이라고 차별받았던 조승희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어느 누구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자 결국 더 이상 갈 데가 없이 궁지에 몰린 존재가 되었다. 분노의 복수를 다짐한 조승희는 오랜 시간 치밀하게 사건을 준비했다. 마지막 순간에 그는 유언장과도 같은 <선언문>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녹화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그는 버지니아공대의 기숙사와 강의실에 있었던 학생과 교수들을 향해 분노의 총격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많은 무고한 생명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에는 조승희와 같은 다수의 외국계도 포함돼 있었다. 조승희가 사건을 벌인 직후 엔비시(NBC) 방송국에 보낸 동영상 속에서 이 청년은 “너희는 나를 괴롭히면서 즐거워했다. 너희의 즐거움을 위해 나는 머리에 암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아팠으며 심장은 갈가리 찢어졌고 아직도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오늘날 세계는 예전보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흐려졌으나, 실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영역에서는 끝없는 충돌과 갈등을 낳고 있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미국 사회에서 이제 인종갈등은 테러와 동일한 문제로 다루어야 할 정도로 심각해졌다. 세계 테러리즘 인덱스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가 3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중에서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시리아 등 5개국에 78%가 집중됐다. 게다가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테러는 이제 이들 지역을 넘어서 서유럽 국가에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종교적, 인종적인 이유로 차별을 받던 소수자 계층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고 암 덩어리처럼 존재하다가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작가 요나스 스탈
테러·폭력 다룬 작품 두드러져
예술?정치 묶는 ‘뉴월드서밋’ 설립
‘버지니아 사건’ 조승희 희곡 공연도

그가 기획한 <테러리스트 정상회담>
2012년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첫선
“현실 변화에 기여하는 예술” 고민
시리아 쿠르드 지역 등 6차례 진행

개념미술과 퍼포먼스 작가 요나스 스탈은 오늘날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테러와 폭력을 주제로 삼은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는 네덜란드의 엔스헤데와 미국 보스턴에서 기념비 예술을 전공하고 예술과 민주주의 그리고 프로파간다의 관계에 대해 매달리고 있다. 그는 예술과 정치를 하나로 묶는 조직인 <뉴월드서밋>의 설립자이기도하다. <뉴월드서밋>은 ‘국가 없는 정치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한 ‘대안 의회’로서 기능한다. 그의 작업은 사회참여, 전시, 극장에서의 공연, 그리고 출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분야를 망라한다. 이런 종류의 작업으로 스탈은 베를린 비엔날레(2012), 베네치아(베니스) 비엔날레(2013), 상파울루 비엔날레(2014) 등 주요 국제행사에 초대받았고, <포스트 프로파간다>(2009), <권력?-어떤 사람들을 위하여?!>(2010) 등에 이어 시리아 문화혁명을 다룬 <국가 없는 민주주의>(2015)에 이르기까지 여러 저작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시리아 서부 쿠르드 지역의 자율정부와 함께 지역의회를 설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나스 스탈은 버지니아공대 총기 사건의 범인 조승희가 2006년 가을 학기 과제로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한 공연 <리처드 맥비프>를 201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무대에 올렸다. 요나스 스탈 누리집 갈무리
민주주의 근간이 파괴되고 있다

요나스 스탈의 작품 활동에서 특히 흥미로운 게 2012년 7회 베를린 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뒤 국가 및 종교 간 갈등의 원인과 이를 둘러싼 내전, 테러 등 정치적인 문제를 다루는 행사인 <테러리스트 정상회담>이다. <테러리스트 정상회담>은 지금까지 베를린, 네덜란드, 인도, 브뤼셀, 시리아 쿠르드 자치정부 로자바 등 모두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이 회의에는 국제사회에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단체의 관계자들이 초청됐는데, 그 면면만 보더라도 쿠르드 여성운동 단체, 바스크 독립운동 단체, 아자와드 민족해방 운동 단체, 필리핀 국가민주주의 운동 단체 등의 대표나 단체의 변호사, 경우에 따라서는 법률자문 등에 이른다. 이들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만든 테러방지법인 ‘미국의 애국법’에 따라 테러리스트 단체로 규정된 사람들에게 행해진 비정상적인 체포 및 구금행위 등에 대해서 토론했다. 그들은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예외상태’는 테러와 관련해서 점점 더 확대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는 게 <테러리스트 정상회담>의 메시지다.

가장 정치적인 성향의 비엔날레로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했던 2012년 베를린 비엔날레는 ‘오큐파이(점령) 월스트리트’ 시위대가 내건 정치적 구호를 비엔날레에 접목하면서 전시장을 시위 현장으로 만들었던 것으로도 꽤 유명하다. 이 행사에는 토플리스 시위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우크라이나 여성 퍼포먼스 그룹 페멘이나 정치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해 “실제 삶을 변화시키는 예술”을 논의하는 전시를 선보인 바 있다. 전시장 입구에는 “여기는 미술관이 아니다, 이곳은 당신이 행동하는 공간이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또한 “분배가 없으면 정의도 없고 정의가 없이는 평화도 없고 평화가 없으면 미래가 없다”라는 슬로건 아래 비엔날레의 입장료는 무료였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무료 급식까지 제공했다. 이 행사를 기획한 폴란드 출신의 작가 아르투르 주미예프스키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예술을 찾고 있다”고 말하면서 정치적 현실에 맞대응하는 작가와 정치적 활동가들을 소개한 바 있다. 이 비엔날레에서 가장 주목받은 행사를 꼽으라면, 단연 요나스 스탈의 <테러리스트 정상회담>이라 할 만하다.

백기영
▶ 백기영 홍익대학교 회화과,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 영상미디어 석사 졸업.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한다. 뉴디스코스 아카데미 등에서 현대미술을 주제로 강의한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속성을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함께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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