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26 19:03
수정 : 2016.11.0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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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아부 사다는 시리아 난민 여성들이 겪은 내전의 고통을 현재화한 <안티고네>를 2014년 레바논에서 무대에 올렸다. 공연에 참가한 24명의 여성은 이 연극을 통해 자기치유의 과정을 경험했다. 아페르타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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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백기영의 미술 교차로
(4) 시리아 시민혁명과 ‘마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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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르 아부 사다는 시리아 난민 여성들이 겪은 내전의 고통을 현재화한 <안티고네>를 2014년 레바논에서 무대에 올렸다. 공연에 참가한 24명의 여성은 이 연극을 통해 자기치유의 과정을 경험했다. 아페르타프로덕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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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의 대부도에 있는 경기창작센터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당시 우리는 한국·아랍소사이어티의 후원으로 해마다 3명의 아랍권 작가들을 초청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아랍과의 교류가 전무하던 상황이었기에 아랍회원국으로부터 작가를 추천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한 해 진행하고 어려움을 느꼈던 우리는 이듬해부터 센터 차원에서 직접 작가들을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010년 12월18일 튀니지를 시작으로 북아프리카와 아랍권 국가들로 확산된 민주화운동 ‘아랍의 봄’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특히 그해 봄, 이집트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독재 시위가 일어났고, 그 결과로 내각이 해산되고 대통령이 물러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 상황은 인근 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쳤고, 시리아에서는 시민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우리가 어렵사리 수소문한 끝에 초청한 작가가 시리아 출신이었다는 사실. 우리는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오마르 아부 사다를 우여곡절 끝에 입국시키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는 도착 후 줄곧 자신의 스튜디오에만 칩거하는 등 도무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 복도에서라도 우연히 누군가와 마주칠라치면 말조차 섞지 않고 피하기 일쑤여서, 다른 입주 작가들 사이에서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사람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작가들이 입주해 있는 기간 동안 우리는 작가들과 함께 기관 차원의 성과를 발표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터라 이런 그의 태도에 우리 스태프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공연을 몇 주 앞두고 느닷없이 아랍어로 쓰인 희곡 하나를 건네주었다. 번역을 거쳐야 했기에 우리는 공연 무대가 오르기 전까지 그 희곡의 내용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 낭독 형식의 공연
2011년 10월6일 전시동 1층 갤러리에 그의 낭독 공연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한국 여성 배우가 대독한 그의 공연 <거리를 보라…이것이 희망의 모습이다>의 초연이 시작됐다. 공연의 개념은 매우 간단했다. 책상 앞에 앉은 한 여성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1시간 반 동안 읽는 것이어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공연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낭독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모두가 꼼짝도 않고 앉아서 끝까지 자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이 공연의 스크립트는 이집트 작가 아흐다프 수와이프가 혁명 시기 동안 작성했던 글과 실제 시리아 청년들과 나눈 대화를 조합해서 쓴 것이었다.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빠른 속도로 오르내리는 시리아 청년들의 대화는 숨 막히도록 긴장돼 있었으며 혁명의 파도가 밀려오는 시간을 마주한 인간의 공포와 희망이 섞여 있었다. 그 공간 속에선 시리아 언론이 말하지 않는 정보들이 교환되고 있었다. 실제 친구와 이웃집 사람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청중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 중의 한 사람으로 상황에 동참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여성 배우의 목소리도 지쳐갔다. 그만큼 긴장되고 숨 막히는 대사들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났을 때 그제야 우리 모두는 오마르의 우울하고 지친 낯빛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오마르 아부 사다는 이처럼 내전사태 속에 처해 있는 시리아의 현실을 작품으로 다룬다. 그는 아버지와 가족을 기쁘게 하려고 전공했던 전기공학을 그만두고 공연예술로 전향했다고 한다. 졸업 후 그는, 친구 여섯 명과 함께 다마스쿠스에서 스튜디오 시어터 극단을 조직해 2004년에 <불안>이라는 제목의 공연을 시작으로 <불면증>과 같은 공연을 잇달아 기획해 영국에도 소개했다. 오마르의 극단은 ‘공공공간에 개입하는 새로운 극장’이라는 실험을 시도했는데, 마땅히 공연을 올릴 만한 무대도 부족했을 뿐 아니라, 극장 공연에 익숙하지 않는 일반인들을 만나기 위한 방법으로 마을을 찾아다니는 형식이었다. 그들은 2005년부터 2년간 시리아의 낙후된 60여개 마을을 방문해 전문배우들과 마을 주민이 함께 마을극장을 만들었다. 그러던 그가 국제적인 무대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12년 국제다원예술축제인 ‘미팅포인트6’의 선정 작가로 소개되면서였다. 이 행사는 아랍청년공연예술 펀드가 기획해 예술가들과 지역을 연결하는 이벤트를 여러 지역을 이동하면서 진행한다.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시각예술과 음악까지 연결하는 학제적 프로젝트로 비엔날레처럼 매회 새로운 예술감독을 선정한다.
경기창작센터에서 낭독 공연을 했던 오마르 아부 사다는 이듬해 4월 한국의 봄 페스티벌 초청으로 두산아트센터에서 <카메라를 봐 주시겠습니까?>를 무대에 올렸다. 당시 시리아의 상황은 더 참담해져 있었다. 반정부 시위에 나선 청년들을 정부군이 진압해 사망자가 7000명이 넘고 구금자들이 많아서 교도소가 넘쳐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이 연극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시리아 보안당국의 강압적인 조사와 고문을 고발하고자 했다. 공안요원은 반정부 활동에 연루된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구금했다. 이 공연에는 보안당국의 조사에서 살아남은 청년들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하는 아마추어 영화감독 ‘노라’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고문과 죽음의 공포를 견뎌온 청년들은 노라의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연극의 제목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는 반복되는 노라의 주문에서부터 따온 것이었다.
시리아 출신 오마르 아부 사다
전기공학 전공한 참여예술가
배우들과 낙후된 마을 찾아가
‘공공공간에 개입하는 극장’ 실험
‘미팅포인트6’ 선정작가로 소개
내전 참상 현재화한 ‘안티고네’
난민 여성들엔 자기치유의 과정
“관객은 창조작업의 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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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열린 국제다원예술축제 ‘미팅포인트6’의 한 장면. 미팅포인트6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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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 지금이어야 하는가?”
한동안 나는 그를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그의 소식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2014년에 24명의 시리아 난민 여성들과 함께 레바논에서 <안티고네>를 무대에 올렸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 연극은 소포클레스가 쓴 원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 여성들이 겪었던 고통스런 내전의 경험을 담아 현재화한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 참여한 여성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으며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처럼 둔갑되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여성들은 이 연극을 통해서 스스로 치유하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읽기와 쓰기가 되지 않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하니 이 공연은 전문배우들로 우아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마르는 2011년 이후 더 이상 다마스쿠스에서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던 터라, 여기저기를 떠돌며 작업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들이 만나는 관객에 대해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배우는 같은 시공간에 관객과 함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창조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지금 왜 다른 관객이 아닌 이들과 함께 있는가? 또 왜 여기인가? 그리고 왜 지금이어야 하는가?” 하고 되물었다. 그가 시리아의 마을극장에서 만났던 관객들은 자기가 비교적 잘 아는 관객들이었고 배우는 그들과 함께 공연을 만들어갈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지금 그들이 만나는 관객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정보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상황을 고발하는 공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난민이 되어 다른 나라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내전으로 지난 5년 동안 25만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이 상황에서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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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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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영 홍익대학교 회화과,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 영상미디어 석사 졸업.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한다. 뉴디스코스 아카데미 등에서 현대미술을 주제로 강의한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속성을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함께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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