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09 19:56
수정 : 2016.11.01 10:48
[토요판] 백기영의 미술 교차로
(5) ‘사회조각가’ 요제프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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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 현대미술 행사인 도쿠멘타가 열리는 카셀 시의 프리데리치아눔 전시관 앞에 상수리나무를 심고 있는 요제프 보이스. 그는 지구에 더 이상 나무를 심을 곳이 없어질 때까지 나무를 심겠다고 한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7000그루 상수리나무 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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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삶으로서의 예술’을 꿈꾸는 예술가들은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 무한한 확장을 시도했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독일의 개념미술가 요제프 보이스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사회조각’ 혹은 ‘확장된 개념의 예술’이라고 불렀다. 예술가의 작업이 캔버스와 같은 평면이거나 대리석과 같은 입체가 아니라 사회라니? 그렇다면, 예술가가 사회를 조각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사용할 수 있을까? 보이스는 대표적으로 교육과 정치를 예로 들었다. 그래서 그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모든 사람이 예술가다!’라는 주장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예술 교육을 위한 입학 방식과 충돌을 빚기에 이르렀다. 미술대학이 시험을 통해서 입학생을 걸러내는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어야 할 예술 교육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그는 교수직에서 퇴출당했다. 이 사건은 지금도 독일 미술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보이스 일화 중에 하나로, 보이스가 ‘사회조각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에 일조했다. 그는 자신의 부당한 해고에 대한 끈질긴 항고 끝에 복직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동시에 ‘내가 있는 곳이 곧 아카데미!’라고 주장하면서 대안 미술대학인 ‘자유국제대학’을 설립해 많은 추종자들을 길러냈다. 그는 또한 독일 녹색당 당원으로서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직접민주주의와 독일의 환경정책에 대한 급진적인 제안을 지속적으로 제기한 그는 <7000그루의 상수리나무> 프로젝트와 같은 나무심기 프로젝트를 예술작업으로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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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의 상수리나무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된 지 30년이 되던 2012년 13회 카셀 도쿠멘타에서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는 정원 한구석에서 독특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깡마르고 창백한 얼굴의 키 큰 남자가 데리고 있는 하얀 강아지의 앞쪽 오른발은 온통 핑크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다. 카셀 도쿠멘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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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토끼’에게 예술을 설명
독일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행사 카셀 도쿠멘타에 1964년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그는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7년에도 그 행사에 이름을 올렸다. <7000그루의 상수리나무> 프로젝트는 그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예술작품이었다. 그래서 도쿠멘타가 열리는 카셀 시의 프리데리치아눔 전시관 앞에는 보이스의 상수리나무 두 그루가 아직도 남아 있다. 오른쪽 나무는 보이스가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심은 나무여서 그가 죽은 뒤 아들이 심은 왼쪽의 7000번째의 나무보다 크다. 그는 녹색당의 정치적인 이념을 넘어서 ‘전 세계 5억 동물들이 나의 유권자’라고 주장하거나, ‘죽은 토끼’에게 예술을 설명하고 ‘코요테’와 1주일을 전시장에서 보내며 ‘나는 아메리카를 사랑하고 아메리카도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로 미국 문명을 조롱하는 등의 작품을 선보이곤 했다. 자신을 일종의 샤먼으로 외쳤던 그는 지구에 더 이상 나무를 심을 곳이 없어질 때까지 나무를 심겠다고 한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다.
그의 이상에 동조한 개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그는 결국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고, 한 그루에 약 5만원 정도 하는 ‘보이스 나무’들을 지금도 카셀 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보이스 사후, <7000그루의 상수리나무>는 새로운 난관에 봉착했다. 보이스가 심은 나무들은 ‘예술작품(?)’이면서 동시에 도시개발을 가로막는 민원의 대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보이스의 나무들은 여기저기에서 뽑히는 수난을 당했다. 심지어 보이스 나무의 이정표로 심어 놓은 돌기둥 50개가 도난당하기도 했다. 카셀 시는 2002년 ‘7000그루 나무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보이스의 나무를 보호하고 개발로 인해서 나무를 옮겨 심어야 하는 상황이 닥칠 때 원만한 해결을 하는 등의 사업을 여러 회원들의 후원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재단의 발표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보이스 나무는 총 6962그루라고 한다. 보이스 돌기둥으로 구분된 그의 상수리나무들은 삶과 자연이 아니라 ‘예술’로 분류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는 믿음
대안 미술대학 세워 교육에 힘써
‘7000그루의 상수리나무’ 프로젝트
현대 물질문명 비판 작업의 하나
도시개발 막는다며 수난당하자
피에르 위그 등이 뜻 이어받아
벌, 거미, 파리 떼 이용한 작업도
인간 세상은 어떤 미래일까
그로부터 다시 10년 후, 보이스의 상수리나무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된 지 30년이 되던 2012년 13회 카셀 도쿠멘타는 ‘에코멘타’, ‘도그멘타’라는 별칭과 함께 생태적이고 동물친화적인 전시로 문을 열었다. 아름다운 빌헬름스회에 산성으로부터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정원을 자랑하는 이 도시는 구석구석 예술작품들로 가득 찼다. 이 전시에서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는 정원 한구석에서 퍼포먼스와 설치작업을 선보였는데, 서술하자면 이 정원에는 깡마르고 창백한 얼굴의 키 큰 남자가 아침부터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배회하거나 앉아서 멍하니 관람객들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데리고 있는 하얀 강아지의 앞쪽 오른발은 핑크색으로 염색이 되어 있었고 그의 근처 잡초들 사이에 있는 대마초로 보이는 환각식물을 식별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었다. 바닥에 깔렸던 보도블록은 공사 중인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고 이 벽돌 중 몇 개에는 특유의 핑크색이 칠해져 있었다. 숲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여성 누드상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이 누드상의 머리에는 살아 있는 벌들이 집을 짓고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수풀 사이에서 뒹구는 나무 밑동에는 개미들이 바글거리며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이 나무들 근처에 돌기둥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는다면, 이 나무 밑동이 죽은 보이스 나무의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없었다. 녹색혁명을 상징하던 보이스의 상수리나무가 죽은 자리에서 개미들은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있었다. 관람객이 피에르 위그의 작업에서 마주칠 수 있는 거라곤 우연히 버려진 뼈다귀를 물어뜯는 핑크색 염색 발 강아지를 마주치는 것이고 지루한 오후에 두 팔을 늘어뜨리고 앉아 있는 퍼포머의 초점 없는 시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태적인 환경설치, 북극의 빙하를 재현한 설치를 주로 해왔으며 개와 같은 동물이나 수족관의 물고기, 벌이나 거미 같은 곤충, 심지어 올해 하노버에서는 파리 떼를 작업에 이용해 왔다. 그것은 우연히 마주친 삶과 같은 것이어서 그것을 ‘예술’로 인식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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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문을 연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의 1층 전시장에는 피에르 위그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식당에서 인간의 가면을 쓰고 손님을 맞이하는 원숭이 픽션 다큐멘터리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SeMA비엔날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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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아 인간을 흉내 내는 원숭이
얼마 전 문을 연 SeMA(서울시립미술관)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의 1층 전시장에는 피에르 위그가 2011년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떠나버린 식당에서 인간의 가면을 쓰고 손님을 맞이하는 원숭이 픽션 다큐멘터리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이 원숭이는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물수건을 나누어 주는 등의 잔심부름을 해왔는데, 원전 사고로 모든 사람들이 버리고 간 마을에 홀로 남아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식당에서 자기가 해왔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파국에 직면한 인간의 세상이 어떤 미래일 것인지 질문하고 있었다. 보이스를 비롯한 환경주의자들이 수십년 전부터 인류에게 던졌던 경고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가? 이 버려진 죽음의 땅에 홀로 남아 인간을 흉내 내고 있는 원숭이는 죽음의 땅에 대한 자각이 없다. 그는 그저 파국 이전의 일상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원숭이는 원전 사고를 경험하고도 위험을 자각하지 못하는 현대인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혁명을 꿈꾸던 시기가 지나고 우리는 지난 세기 혁명가들이 경고했던 파국이 현실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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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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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기영 홍익대학교 회화과,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 영상미디어 석사 졸업. (사)미술인회의 사무처장,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한다. 뉴디스코스 아카데미 등에서 현대미술을 주제로 강의한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속성을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함께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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