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백기영의 미술 교차로
(7) 다큐멘터리 연극 ‘100% 광주’
예술에 있어서 ‘관객’은 누구인가? ‘예술가’는 어떻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꽤 오래된 질문이다. 일찍이 백남준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가위를 들고 청중석에 앉아 있던 작곡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랐다. 그는 소극적인 관람객을 놀라게 하거나 분노하게 하는 등의 자극을 통해서 관객의 반응을 유도했다. 그러나 정작 백남준의 의도와 달리 존 케이지는 그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어떤 아시아계 미치광이가 가위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고 달려드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백남준을 위시한 플럭서스(1960년대의 국제적인 전위예술운동) 예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을 파괴함으로써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예술은 더욱 낯설고 기괴한 것이 되고야 말았다. 이처럼 관객은 예술로부터 도망치기만 할 뿐, 결코 예술가의 손을 잡아 주지 않기 때문에 예술에 있어서 관객과의 완전한 소통은 요원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백남준이 플럭서스의 문을 열고 나와서 텔레비전으로 들어간 이유도 예술이 미디어 자체가 되는 것을 열망했기 때문이었다.
‘통계’와 ‘문답’ 프레임으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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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술극장이 선보인 <100% 광주> 공연은 통계수치 1%당 시민 1명씩 모두 100명의 일반인이 참여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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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수치 1%당 시민 1명씩 할당
2008년 ‘100% 베를린’ 공연이 시초
런던·파리 등 이어 열다섯번째 ‘예’·‘아니오’ 답변에 담긴 일상
짜여진 각본 없이 굴러간 무대
통계에 가려진 ‘개인’에 눈길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 물음 던져 모든 출연자 소개가 끝나자, 질문에 맞추어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가며 ‘예’와 ‘아니요’의 답변으로 광주시민의 의식을 알 수 있는 통계수치를 보여주었다. 이 공연은 ‘통계’와 ‘문답’ 프레임으로 짜여 있었지만, 지루하지 않게 진지한 질문과 개인적인 질문이 오가며 진행되었다. 양자택일식 질문, 다섯 단계의 가중치 질문, 카드섹션의 색채로 구분되는 질문, 계단의 양측에서 질문에 해당되는 사람들만 보여주는 질문 등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면서 100명의 광주시민은 그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여러 블로그에 떠돌아다니는 후기를 살펴보니, 이 공연은 짜여진 각본도 없었고 공연마다 대사를 바꾼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5시간의 리허설을 했다고 하는데, 그 리허설이란 주로 모인 사람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놀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조차 과연 이것이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가끔 긴장했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내 생애에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대목에서 어린아이가 뛰어나와 폭소를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하는가 하면,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어디로 갈지 주저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모두를 즐겁게 했다. 밝은 조명 아래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답한 시민들도 조명이 꺼진 상황에서는 그렇다는 답변 쪽으로 옮겨가서 청중들을 웃게 했다. 이런 상황들은 통계의 객관성을 의심하게 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될 때면 배경음악도 의뭉스럽게 넉살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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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24시간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무대에 오른 일반인 참가자 100명은 제각기 자신들의 하루 일과를 표현했다.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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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광주> 공연은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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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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