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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4 20:04 수정 : 2016.11.01 10:46

[토요판] 백기영의 미술 교차로
(7) 다큐멘터리 연극 ‘100% 광주’

예술에 있어서 ‘관객’은 누구인가? ‘예술가’는 어떻게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꽤 오래된 질문이다. 일찍이 백남준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 가위를 들고 청중석에 앉아 있던 작곡가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잘랐다. 그는 소극적인 관람객을 놀라게 하거나 분노하게 하는 등의 자극을 통해서 관객의 반응을 유도했다. 그러나 정작 백남준의 의도와 달리 존 케이지는 그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어떤 아시아계 미치광이가 가위로 자신의 가슴을 찌르려고 달려드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백남준을 위시한 플럭서스(1960년대의 국제적인 전위예술운동) 예술가들은 기존의 예술을 파괴함으로써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예술은 더욱 낯설고 기괴한 것이 되고야 말았다. 이처럼 관객은 예술로부터 도망치기만 할 뿐, 결코 예술가의 손을 잡아 주지 않기 때문에 예술에 있어서 관객과의 완전한 소통은 요원한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백남준이 플럭서스의 문을 열고 나와서 텔레비전으로 들어간 이유도 예술이 미디어 자체가 되는 것을 열망했기 때문이었다.

‘통계’와 ‘문답’ 프레임으로 구성

아시아에술극장이 선보인 <100% 광주> 공연은 통계수치 1%당 시민 1명씩 모두 100명의 일반인이 참여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지난 아방가르드 시절 예술가들의 일방적인 소통을 넘어 최근 관객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예술가들은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동시대 예술에 있어서 관객과 예술가는 종종 자리를 바꾸거나 아예 예술가가 존재하지 않는 예술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시아예술극장에서 시도했던 <100% 광주>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100명의 일반인이 참여해서 벌이는, 이른바 ‘다큐멘터리 연극’이었다. 이 공연을 기획한 리미니 프로토콜은 2008년 독일의 베를린 헤벨 극장에서 <100% 베를린> 초연 무대를 선보이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룹이다. 그 이후 그들은 런던, 파리, 브뤼셀, 멜버른, 도쿄 등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공연을 선보였는데, 광주는 그들의 열다섯번째 도시가 되었다.

2014년 4월2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열흘 뒤에 국립극장 무대에 100명의 광주시민이 올랐다. 이들은 두 차례 광주 초연을 이미 한 주 전에 마친 뒤였다. “저는 남미에 사는 것이 꿈이었지만, 지금은 광주 통계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무대에 등장한 첫번째 시민이 자신의 소개를 시작하자, 나머지 시민들도 차례로 자신을 소개했다. 캐스팅된 시민들은 성별, 국적, 주소, 나이, 가족 형태 등의 통계 수치의 1%를 시민 1명으로 대표하고 있었다. 광주에 남성이 49%, 여성이 51%라면 이 공연에는 49명의 남성과 51명의 여성이 광주를 대표했고, 외국인 2명은 외국인의 통계를, 5명의 80살 이상의 노인이 또 3살짜리 아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각각의 수치대로 통계를 대표했다.

100명의 일반인 참여하는 형식
통계수치 1%당 시민 1명씩 할당
2008년 ‘100% 베를린’ 공연이 시초
런던·파리 등 이어 열다섯번째

‘예’·‘아니오’ 답변에 담긴 일상
짜여진 각본 없이 굴러간 무대
통계에 가려진 ‘개인’에 눈길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 물음 던져

모든 출연자 소개가 끝나자, 질문에 맞추어 사람들이 자리를 옮겨가며 ‘예’와 ‘아니요’의 답변으로 광주시민의 의식을 알 수 있는 통계수치를 보여주었다. 이 공연은 ‘통계’와 ‘문답’ 프레임으로 짜여 있었지만, 지루하지 않게 진지한 질문과 개인적인 질문이 오가며 진행되었다. 양자택일식 질문, 다섯 단계의 가중치 질문, 카드섹션의 색채로 구분되는 질문, 계단의 양측에서 질문에 해당되는 사람들만 보여주는 질문 등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묻고 답하기를 반복하면서 100명의 광주시민은 그들의 의견을 피력했다. 여러 블로그에 떠돌아다니는 후기를 살펴보니, 이 공연은 짜여진 각본도 없었고 공연마다 대사를 바꾼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이 없었다. 5시간의 리허설을 했다고 하는데, 그 리허설이란 주로 모인 사람들과 어울려 자유롭게 놀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공연에 참여한 사람들 스스로조차 과연 이것이 공연이 될 수 있을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은 가끔 긴장했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주저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내 생애에 전쟁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대목에서 어린아이가 뛰어나와 폭소를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하는가 하면,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어디로 갈지 주저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모두를 즐겁게 했다. 밝은 조명 아래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다’고 답한 시민들도 조명이 꺼진 상황에서는 그렇다는 답변 쪽으로 옮겨가서 청중들을 웃게 했다. 이런 상황들은 통계의 객관성을 의심하게 했다. 이런 상황이 연출될 때면 배경음악도 의뭉스럽게 넉살을 떨었다.

광주의 24시간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무대에 오른 일반인 참가자 100명은 제각기 자신들의 하루 일과를 표현했다.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무엇보다도 광주의 24시간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100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의 일과를 연기했는데,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에 맞추어 각자 일상적으로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보여줬다.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는 가정주부,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 새벽까지 노래방에서 술 마시고 노래하는 청년들과 그들이 잠들어가는 새벽시간까지 택시를 운전하는 사람들, 대낮에도 잠을 자야 하는 소수의 낮과 밤이 바뀐 사람들이 각자의 일상을 연기할 때, 필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도시의 일상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위에 올려진 광주의 일상은 그 자체로 잔잔한 감동이 있었다.

‘저는 30년 안에 죽게 될 것입니다’

공연이 무르익어갈 무렵 무대 위의 광주시민들은 관객으로 앉아 있는 서울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이 공연에서 5·18 이야기를 기대/예상 했었나?”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어 ‘그렇다’고 답했다. 질문은 다시 무대 위의 광주시민들에게 넘어갔다. “광주가 5·18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나요?”

무대 위에 있었던 대부분의 광주시민들도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가 갖고 있었던 광주에 대한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지역적 전형이나 심지어는 통계로 나타나는 현대사회의 시스템의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하나의 개인들이 주목받는 자리였다.

<100% 광주> 공연은 예술가와 관객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묻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아시아예술극장 제공
뒤이어 이어지는 많은 질문들은 관객과 무대 위의 광주시민들이 주고받는 것으로 구성되어서 공연장 전체는 통계를 기반으로 대화하는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공연의 마지막에 마지막 질문이 스크린 위에 나타났다. ‘저는 30년 안에 죽게 될 것입니다.’ 제일 먼저 84살 최고령 할머니와 나이 많은 참여자들이 무대 중앙의 밝은 빛으로 들어섰다. 다시 이어서 ‘저는 70년 안에 죽게 될 것입니다’라는 질문에 몇몇 아이들을 제외한 모든 참여자들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는 120년 안에 죽게 될 것입니다’라는 질문에 모든 참여자들이 무대 중앙에 들어섰다. 죽음은 통계를 무색하게 했다. 죽음 앞에서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열흘 전에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백기영
▶ 백기영 홍익대학교 회화과,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 영상미디어 석사 졸업. (사)미술인회의 사무처장,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한다. 뉴디스코스 아카데미 등에서 현대미술을 주제로 강의한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속성을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함께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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