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0.28 19:31
수정 : 2016.11.01 10:45
[토요판] 백기영의 미술 교차로
(8) 일본의 청년작가그룹 ‘침↑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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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파빌리온>은 전 세계에서 모은 종이학 더미 아래 미로 구조물을 배치했다. 관람객들은 컴컴한 이 공간을 지나며 우리 삶을 위협하는 핵무기의 공포를 체감할 수 있다. 부산비엔날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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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로 지속되는 여진과 함께 이제 한반도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휴전 상태인 한반도에서 느끼던 냉전의 공포에 더해, 이제 우리는 미처 예견할 수 없는 자연재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새로운 공포와 대면하게 되었다. 지진이 발생하기 이전에 인근 지역에서 가스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접수되었다거나 개미 떼가 이동하고 야생동물들이 지진을 예견했다는 둥의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자연재해 예측에 둔감한 인간의 공포를 반영하고 있다. 2007년 영국의 테이트모던에서는 167미터 길이로 갈라진 미술관 바닥이 설치되었다. 지진과 같은 재난 현장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콜롬비아 보고타 출신의 도리스 살세도의 설치작업이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십볼렛’이라는 이야기로부터 착안된 이 작업은 길르앗인이 이 단어의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에브라임인을 구별하여 죽였던 사건과 연관이 있다. 미술관 바닥을 가로지르는 경계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와 같은 차별로 가득 차 있는 지금의 세계 현실을 비판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우리 시대는 지진, 홍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와 내전과 인종갈등 등의 사회적 재난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올가을 서울과 광주, 부산에서 열린 비엔날레는 이 불확실한 세계에서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할 수 있었다.
2005년 6명이 결성한 ‘침↑폼’
부산비엔날레에 <파빌리온> 출품
종이학 더미 아래 컴컴한 미로
핵무기 공포 체감하라는 의도
후쿠시마 원전사고 4주기 맞아
<바람을 따라가지 마세요!> 진행
누리집 접속하면 하얀색 화면뿐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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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폼’의 <슈퍼 쥐>는 행위예술가 여섯이 일본 시부야 지역을 돌면서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쥐를 잡는 영상 프로젝트다. 영상에서는 기형적으로 거대한 쥐를 잡아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피카추로 페인팅해서 다시 도시에 방사하는 과정이 소개된다. 아시아 아트 어워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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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버섯구름을 연상시켜
이번 호에서는 부산비엔날레에서 만났던 일본의 예술가 그룹 ‘침↑폼’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2005년 예술가 6명으로 결성된 ‘침↑폼’은 무정부적이고 종말론적인 현실을 폭로하는 퍼포먼스, 영상,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출품된 <파빌리온>은 형형색색의 종이학들이 쌓여 있는 미로 구조물의 공간이데, 이 종이학들은 히로시마시가 그동안 원폭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모아왔던 것이라고 한다. 추모의 의미로 모인 종이학들은 ‘침↑폼’에 의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여러 색깔의 종이학 더미 아래로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관람객은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나가는 출구까지 깜깜하고 어두운 통로를 지나야만 했다. 이 어두움은 원자폭탄이 떨어져 버섯구름의 장관을 만들어 냈던 순간의 죽음을 연상시켰다. 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서 인류가 선택했던 핵무기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당시 35만 거주 인구 중 8만3793명이 사망했고 나가사키에서는 24만 중 7만4천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문제는 생존자들 중에도 상당수는 방사능 피폭으로 기형아를 출산하는 등 지금까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핵무기로 인한 공포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이후에는 자연재해와 연결된 핵발전소 사고로 전환하고 있다. 탈핵주의자들은 핵은 절대 통제 가능한 에너지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실 ‘침↑폼’의 작업을 처음 본 것은 꽤 오래전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아시아 아트 어워드’에서였다. 이 전시에서 지진과 해일 피해 등 재난에 노출되어 있는 일본의 청년작가 그룹 ‘침↑폼’은 암울한 세기말적 상황을 다룬 작품 <죽음의 검은색> 퍼포먼스 영상과 <슈퍼 쥐>(Super Rat)를 소개했다. 이 영상에는 까마귀 모양의 새를 손에 든 여성 행위예술가가 특유의 소리를 발산하는 초음파 장치를 들고 오토바이에 앉아 도시를 달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머리 위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가 그녀가 이동하는 경로를 따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검은 새들을 도시의 하늘 위로 이끌고 다니는 그녀는 마치 유럽의 동화에 등장하는 마녀처럼 보였다. 또한 피리를 불어 도시의 쥐 떼를 몰고 가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까마귀는 ‘흉조’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 문화에서는 까마귀와 죽음을 연결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하는데, ‘침↑폼’은 까마귀뿐만 아니라, 슈퍼 쥐와 같이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동물과 자신의 작업과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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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세기말적 상황을 다룬 작품 <죽음의 검은색>은 초음파 장치를 들고 오토바이에 앉아 도시를 달리는 여성 행위예술가의 머리 위로 까마귀 떼가 함께 움직이는 장면이 나온다. 아시아 아트 어워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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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보았던 또 다른 작업은 <슈퍼 쥐>였다. 행위예술가 여섯이 일본 시부야 지역을 돌면서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쥐를 잡는 영상이었다. 도시에서 기생하는 야생동물인 쥐들이 점점 더 커져 슈퍼 쥐가 되어가고 있는데, 이 영상에서는 기형적으로 거대한 쥐를 잡아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피카추로 페인팅해서 다시 도시에 방사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었다. ‘침↑폼’의 피카추들이 도시를 뛰어다니는 장면을 상상하고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와 같은 작업들은 모두 일본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작가들의 <슈퍼플랫> 같은 대중적인 팝아트 이미지 작업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이들은 재난 상황을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그들의 또 다른 작업 <생큐 셀렙! 나는 보칸이다>는 캄보디아의 폴 포트 체제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 당시 설치된 지뢰 제거 작업에 동참해서 만들어졌다. ‘침↑폼’은 이 프로젝트를 통하여 멤버 엘리의 조각상을 만들어 자선경매를 벌이고 그 수익금을 캄보디아 지뢰 피해자들에게 기부하기도 했다.
접속 오류 아닌가 착각 들 정도
이들이 2015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4주기를 추모하기 위해서 3월11일에 시작해 여전히 진행하고 있는 <바람을 따라가지 마세요!>는 중국 작가 아이웨이웨이를 비롯하여 작가 12명이 일반인이 통제된 실제 후쿠시마 지역에서 수행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누리집에 접속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하얀색 화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일본어와 영어로 소개되는 음성 안내가 없다면 우리는 인터넷 접속 오류로 착각하기 쉽다. 이런 실험적인 누리집은 우리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방사능에 대해 일깨우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우연히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강진이 발생하는 지역에도 원자력발전소가 밀집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진과 원자력발전소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생각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고 5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편서풍을 따라 방사능의 공포를 태평양 너머로 날려 보내고 싶어 한다. 마치 그 일은 발생하지도 않았고 우리와는 무관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하얗고 창백한 누리집 화면 너머로 들려오는 마을을 떠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모니터 이면에 숨겨진 방사능의 공포를 확인시켜준다. “이 지역에 공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3년이 더 걸릴지 5년이 걸릴지, 혹은 10년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누리집에선 이런 안내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백기영 홍익대학교 회화과, 독일 뮌스터 쿤스트아카데미 영상미디어 석사 졸업. ㈔미술인회의 사무처장, 경기도미술관 학예팀장을 거쳐 현재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으로 일한다. 뉴디스코스 아카데미 등에서 현대미술을 주제로 강의한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한 속성을 정치·경제·사회적 배경과 함께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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