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9.07 18:44
수정 : 2016.11.16 09:47
원옥금
재한베트남공동체 대표
올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한국에 온 지 20년째인데 올해처럼 더운 여름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베트남보다는 덜합니다. 제가 살던 베트남 남부는 사계절 대신 건기와 우기로 나뉩니다. 두 계절 모두 아주 덥습니다.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가을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날씨가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부터 한국의 가을 날씨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죠. 겨울은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
한국의 가을에는 ‘추석’이라는 명절이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도 같은 날 ‘중추’라는 명절을 쇱니다. 둥근 보름달을 보며 달의 여신에게 소원을 비는 날입니다. 또 한국의 차례처럼 달콤한 음식과 과일과 월병을 장만해서 집 마당에 있는 작은 제단에 올리고 조상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월병은 빵 속에 고기, 삶은 달걀, 채소가 들어가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추석 음식입니다. 추석 무렵이면 가게마다 갖가지 월병을 파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요즘 베트남 추석은 어린이를 위한 날로도 기념합니다. 어릴 때 저도 이날 밤에 별, 새, 용, 토끼 등 모양이 예쁜 색색의 등불을 들고 친척 아이들과 줄지어 동네를 돌며 놀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명절이 되면 고향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한국의 지인들은 명절이면 시댁이나 친정을 방문해 함께 보내는데, 저 같은 사람들은 좀 쓸쓸한 기분이 듭니다. 시댁 식구들은 떠들썩하게 명절을 즐기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명절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힘들고 외롭다고 결혼이주여성들은 말합니다. ‘명절 증후군’은 결혼이주여성에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도 요즘은 한국에서 가부장적 문화가 많이 개선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결혼이주여성은 그나마 한국에 시댁이라는 울타리가 있고 함께할 수 있는 가족이 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명절이면 갈 곳도 마땅치 않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아는 이주노동자 한 명은 추석 때 공장의 빈 기숙사에서 며칠 동안 라면만 먹고 지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어디 가기도 힘들고, 가까운 가게도 모두 문을 닫아서였다고 합니다.
이번 추석은 한국인이나 이주민 모두 풍요롭고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체불임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가 20만명을 넘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경제가 좋지 않으면 중소기업이나 영세기업이 가장 먼저 사정이 어려워지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 같습니다. 부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풍요로운 명절, 추석이 오기 전에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 다 함께 편하게 추석을 보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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