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30 17:45
수정 : 2018.05.30 19:51
원옥금
주한베트남교민회장·서울시 외국인 명예시장
얼마 전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된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남북정상회담 만찬에 나온 북한 옥류관의 평양냉면이죠. 그날 한국의 냉면집들은 손님들이 몰려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냉면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북한이 고향인 분들은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음식을 통해 그동안 갈라져 살았던 한 민족으로서의 정을 느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냉면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어떤 정서를 자극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냉면을 좋아하는데요. 20년 넘게 한국에 살면서 대부분의 식사를 한국식으로 해와서 냉면뿐 아니라 거의 모든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습니다. 한국에 살면서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고생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문득문득 베트남 음식이 생각나고 간절히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고향이 생각나고 그리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음식입니다. 어린 시절 언니 오빠들과 먹던 ‘바인미(반미)’, 호찌민의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며 먹던 쌀국수 ‘분보후에’, 명절이나 생일날에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들, 이런 것들이 가끔은 아주 그립습니다. 오랜 한국 생활도 제 마음속에 있는 고향 음식에 대한 기억을 다 지워버리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한국에도 베트남 음식점이 많이 생겨 집 앞에만 나가도 베트남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베트남 음식점에는 주로 ‘퍼’라는 쌀국수 외에는 제대로 된 베트남 음식이 많지 않습니다. 베트남의 쌀국수는 종류가 아주 많은데 아마 ‘퍼’가 가장 한국 사람의 입맛에 잘 맞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퍼’보다는 ‘분보후에’라는 국수를 좋아합니다. ‘분’은 국수, ‘보’는 소고기, ‘후에’는 베트남 중부지방의 도시인데 후에의 소고기 쌀국수라는 뜻입니다.
맑은 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 ‘퍼’와 달리 ‘분보후에’는 다양한 고기와 채소로 우려내고 고추기름을 더한 빨간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는데 다양한 재료의 맛이 어울리는 아주 맛있는 국수입니다. 예전에 첫아이를 가져 입덧을 할 때 호찌민의 학교 앞 거리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팔던 그 ‘분보후에’ 딱 그것이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어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마침 베트남에 출장을 다녀오는 남편이 그 집을 물어물어 찾아가서 사다준 ‘분보후에’를 정말 맛있게 먹고 입덧이 나았던 생각이 납니다.
음식을 통해 고향의 기억을 떠올리고 추억을 나누는 것은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특히 저 같은 이주민처럼 고향에 쉽게 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향 음식은 삶에 지쳤을 때 몸과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 무엇이죠.
다행히 요즘은 교류가 많아지면서 재료 구하기도 쉬워지고 베트남 사람들이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이 제법 여러 곳에 생겨 그런대로 고향 음식을 자주 먹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 거리, 그때 먹던 맛은 아니지만요.
5월29일 오늘처럼 흐린 날에 따뜻한 국물에 쌀국수 한 그릇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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