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13 18:54
수정 : 2017.07.13 18:59
박이은실의 지리산 책읽기
오랜만에 만난 동료로부터 얼굴이 많이 축났다는 걱정의 말을 들었다. 작년 봄에 지리산 자락으로 이주하고 한동안은 매주 서울을 오가는 피로가 쌓일 법한 일정에도 얼굴 좋아 보인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었었다. 요사이 앞으로 살 집과 연구할 공간을 지으며 직접 노동력을 보태는 일까지 하다 보니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되는 강도의 육체노동을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몸의 피로보다는 심적 괴로움 탓이 크다고 느낀다. 집짓기 시작 전에 여러 지인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궂은 날씨, 예기치 않게 생기는 지출, 같이 공사를 시작한 주변 집과의 일정 조율, 공사 연장으로 인해 생기는 기다림의 시간 등 복병은 수시로 모습을 바꾸며 나타난다. 사실 육체적 피로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런 일들이 가장 감당하기 힘들다. 공기가 연장되면서 공사 완료까지 마지막 한 달여 정도는 작년부터 지내고 있는 거처에서 짐을 옮겨 다른 곳에서 임시로 지내야 하게 되었고 공사를 위해 드나드는 대형 차량들 때문에 마을 길 이곳저곳에 생긴 파손들로 화가 난 동네 원주민에게 변상 약속과 함께 수도 없이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초복을 맞아 마을회관에서 연 행사에 술 상자와 수박 한 통을 들이밀면서 다시 한번 사과한 것은 덤이었다. 몸만 힘들다면 살 집을 짓기 위한 이 정도의 막노동은 너끈히 견딜 만하지만 마음이 힘든 건 정말이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집 짓다가 십년이 늙는다, 집 짓다가 이혼한다 등 처음 들었을 때는 피식 웃어 넘겼던 말들에 이제는 고개가 절로 주억거려지기도 한다.
마음이 괴로워서 몸이 축나는 현상은 사실 신기한 것이다. 마음은 마음이고 몸은 몸일 텐데, 이토록이나 긴밀한 영향을 서로 주고받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마음과 몸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와 관련된 과학적 이론이 제대로 없다는 사실은 의아스럽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의 뇌: 기쁨, 슬픔, 느낌의 뇌과학>(임지원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7)에서 마음과 몸의 관계, 특히 신체의 일부인 뇌가 마음을 만들어 내고 마음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꼼꼼하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은 우리가 건강하고 편안한 상태인지 아니면 곤란하고 괴로운 상태인지를 표현해 주며 생명체 내부의 생명의 상태를 드러내” 준다. 이는 “줄타기와도 같은 아슬아슬한 생명의 현상에서 균형에 도달하기 위한 고군분투의 표현”이기도 하다.
고군분투는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일어난다. 더욱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말 그대로 고군분투를 해야 하는 순간을 수없이 겪는다. 그 과정에서 말 그대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얼굴이 축난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우리를 아프게 할 수 없다.” 상처 입는 약자들은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에 상처를 입는다. 무지한 이들은 결코 상처 입지 않는다.
요사이 약자들에게 상처를 입히고도 귀를 막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몇몇 정치인들과 고위 관료들을 보면 우려스럽다. 물론 이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든 판단을 제대로 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겠다. 예전에 미처 몰라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면, 지금이라도 조용히 자리를 떠나 자숙하며 깨우치고 상처 입은 이들과 나란히 서보려 애써주기를 바란다고. 인간이 최선의 삶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행동과 민주적 국가가 필요하다고 스피노자는 말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다시 한 번 다지는 책임을 진 새 정부의 공직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박이은실 <여/성이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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