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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4 19:01 수정 : 2017.08.24 20:06

박이은실의 지리산 책읽기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는 전화상담업무 노동자들이 언어폭력에서 벗어날 방법을 최근 한 기업에서 고안했다고 한다. 통화연결대기음을 ‘착하고 성실한 우리 딸이 상담드릴 예정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내가 상담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안내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효과는 컸다. 불과 닷새 만에 노동자들의 스트레스지수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하니 말이다.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언어폭력으로부터 노동자들이 해방될 수 있다면 무엇보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그렇게 누군가의 가족관계로 호명되어야지만 비로소 존중해주어야 할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혈족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와 <오이디푸스왕>만큼 오래되고 잘 알려진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이 겹치며 서로 얽혀 있다. 안티고네에게는 여동생과 오빠 둘이 있다. 이들은 왕인 아버지가 사망한 후 아버지의 처남이자 이들의 외삼촌인 왕 크레온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산다. 어느 날, 안티고네의 오빠 폴뤼네이케스가 이웃 나라와 손을 잡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쳐들어오고, 또 다른 오빠 에테오클레스는 이에 대항해 싸운다. 형제는 서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크레온은 왕권을 지키려 싸운 에테오클레스는 장례를 치러준다. 반면, 왕권을 뺏으려고 한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훼손하도록 저잣거리에 방치하고 “누구도 장례를 치러주지 말라”고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이 명령을 어기고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를 치러준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인간에게 예를 다해야 한다고,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고 장례를 치러준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해서였다고. 이것이 죽음을 불사한 안티고네의 주장이다. 결국 안티고네는 왕의 분노를 사 벌을 받고 죽음에 이른다.

이 안티고네의 아버지가 바로 오이디푸스다. 안티고네를 낳은 어머니이자 오이디푸스의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의 아내’이기도 하다. 그러니 오이디푸스는 ‘안티고네와 형제자매들의 아버지’이자 또한 ‘이들의 오빠거나 형’이기도 하다. 이 복잡한 비극적 혈족관계의 시작은 바로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워서 아들인 오이디푸스를 죽도록 내버리는 데서 비롯한다. 유기된 아기였던 오이디푸스를 자식으로 삼고 애지중지 키운 오이디푸스의 아버지 폴리보스와 어머니 메로페는 오이디푸스와 함께 사는 내내 화목한 가족생활을 했지만 어느 날 오이디푸스는 홀연히 집을 떠난다.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살 운명이라는 예언을 들은 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서다. 이후 일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대로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이 두 이야기에 등장하는 복잡한 관계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곳인 것만 같다. 언니, 오빠, 이모, 어머니, 아버지 등 가족관계 안에서 서로의 관계를 칭하는 용어가 혈족관계가 아닌 이들 사이에서도 버젓이 쓰이니 말이다. 어떨 땐 온 나라 사람들이 온통 혈족 관계로 얽혀 있는 것만 같다. ‘손녀 같아서’ 가슴을 만졌고, ‘아들 같아서’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버젓이 말하는 걸 듣고 있을 때는 말이다.

이런 문화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그 뿌리가 얼마나 장구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지 몰라도 핵심은 한가지다. 아버지 남성의 법과 질서, 즉, 가부장제 말이다. 크레온이 조카인 안티고네의 말을 눈꼽만큼도 들으려 하지 않은 이유는 안티고네가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안티고네의 약혼자였던 하이몬의 조언을 결코 들으려 하지 않고 결국 하이몬과 하이몬의 어머니 에우뤼디케 또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하이몬이 크레온 자신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자신의 눈을 뜨겠다고 딸을 인신매매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에게 끝까지 효를 다하는 딸에 대한 이야기를 전래동화라 부르며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사회. 언제쯤 우리는 누구의 혈족이 아닌 다만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게 될까? 몇천년 전 쓰인 그리스의 비극을 돌이켜 읽게 되는 이유다.

박이은실 <여/성이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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