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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은실의 지리산 책읽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아랍 속담이라고 한다. 영화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가 1974년 발표한 영화 제목이기도 하여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잠언이 되기도 하였다.
정신분석학에서 보는 인간의 내면엔 기본적으로 불안이 형성되어 있다. 생후 어느 시기, 자신이 세상과 분리된 독립된 개별체임을 인식하는 단계에 이를 때 불안이라는 정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불안은 인간의 기본설정인 셈이다.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숱한 불안을 겪는다. 각 개인이 각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겪기도 하고,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경우도 있다. 한국처럼 내전과 휴전, 분단을 겪은 사회나, 일본처럼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상시로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더욱이 불안이 일상의 심리로 자리한다.
세계사를 볼 때 불안이 비이성적으로 정치화되면서 극단적인 참상과 비극을 낳았던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상징되는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순혈주의에 입각한 불안이 빚어낸 가장 참혹한 사례로 기억된다. 그 못지않게 참혹한 사건이었음에도 이제는 텔레비전 연예프로그램 제목으로 쓰일 만큼 아무렇지 않게 일상어가 된 사건이 있다. 바로 마녀사냥이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그의 저서 <캘리번과 마녀: 여성,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에서 300년이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유럽에서 어떻게 기독교/남성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목된 여성들이 마녀로 규정받아 고문받고 살해당했는지, 이들이 소유했던 토지와 같은 자산들이 어떻게 종교집단의 자산으로 수탈돼 궁극적으로 자본주의가 출발하도록 만든 최초의 자본, 즉 시초축적이 되었는지 그 과정을 적나라하게 분석한다.
페데리치는 마녀를 자본주의가 파괴해야만 했던 여성 주체라는 세계(이단자이자 치유자, 반항하는 아내, 감히 혼자 살아가고자 하는 여성, 주인의 음식에 독을 섞고 노예의 반란을 책동하는 여성 마술사)의 체현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묻는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지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째서 그렇게도 많은 노동자가 빈민이나 마녀 아니면 범법자로 규정되는가? 수시로 일어나는 토지 몰수와 대규모의 빈민화는 여성에 대한 꾸준한 공격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페미니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검토할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그것은 현재의 이 문제 많은 정치경제적 구조를 바꾸는 데에 얼마나 중요한 시각을 주는가?
페데리치가 말하듯 마녀사냥은 노예화와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인간성 말살의 수단이자 억압의 전형이었다. 그러한 참상이 300년이 넘게 진행되는 동안 유럽의 여성과 남성 안에서 여러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감각이 변형되었다. 저항하는 여성에 대해 300년이 넘도록 이뤄진 정치적 탄압은 여성으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 순응적 성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었다. 불안은 이처럼 비이성적인 방식으로 잔인하게 이뤄진 정치적 탄압을 종교와 자본의 이름으로 합리화시키고 지지하도록 만든 강력한 힘이었다.
그렇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혼을 잃은 인간은 더는 인간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때 영혼이란 종교에서 말하는 몸보다 중요한 어떤 구원의 대상이 아니다. 영혼은 나와 그리고 타자, 지구상에 혹은 우주상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의 공존에 대한 감각이자 공감력이다. 여러 상황이 불안을 부추긴다. 그때마다 되뇌고자 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박이은실 <여/성이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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