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2017 광장의 노래]
시민 1000명 전문가 23명 설문
시민 생각
검찰 공정성·독립성 확보 시급
“검찰은 힘없는 약자만 때려잡아”
“상명하복으로 제 식구 감싸기 급급”
두번째 과제 ‘직접민주주의 강화’
전문가 생각
경제 불평등이 최대 걸림돌
“다수 국민 고통 임계치 다다라”
불평등 원인으로 ‘재벌’ 지목
“여야 막론하고 재벌 의제 실현”
“검찰의 권력이 너무 강하므로 수사권은 경찰에게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37·대전·공무원)
“경제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절망이 한계를 넘어서 사회의 해체 단계로까지 나아가는 위급한 상황이다.”(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한겨레>는 촛불 이후 한국 사회에 필요한 개혁과제를 선정하기 위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까지 다양한 세대, 지역, 직업의 시민 1천명과 전문가 23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들은 최우선 개혁과제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19.9%)를 꼽았고,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 완화’(30.4%)를 선택했다. 시민들은 두번째 과제로 ‘시민의 직접 정치참여’(13.7%)를 택했고,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 완화의 필요충분조건인 ‘재벌개혁’(17.4%)을 골랐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검찰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해 권력을 견제해야 하며,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해 고장난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반해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왜곡의 근본적인 원인인 경제적 불평등과 재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민들이 검찰을 개혁 대상 1호로 지목한 이유은 ‘권력의 시녀’ 노릇을 자임했던 과거의 행적 때문이었다. “현재는 힘없는 약자를 때려잡는 그런 검찰이지 않은가?”(47·서울·기타) “국민 누구라도 다 알 듯한 일을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본인들만 아니라고 하는 게 참 우습다.”(42·경기·주부) “검찰총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 대통령이 잘못한 일을 검찰이 제대로 파고들어 조사할 수 있을까.”(32·경기·주부) “상명하복의 위계 구조 속에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하다.”(40·세종·기타) 대안으론 검찰총장 직선제와 경찰 수사권 독립, 견제·감시 기구 창설, 권위적 조직문화 개선 등을 제시했다.
촛불 이후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국민투표, 시민의회 등 다양한 제도적 변화 요구도 많았다. “(시민이) 직접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이든 장관이든, 대통령이든 단지 대리인일 뿐이다.”(46·부산·자영업) “국회의원, 시장들과 에스엔에스 등 온라인에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23·서울·대학생) “직접 국민투표를 시행해 중대한 일들은 국민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32·서울·사무기술직) “국민(참여)재판이 있는 것처럼 어떠한 (국가) 정책을 실시하고자 할 때 일정 비율의 국민이 참여해 찬반 의견을 내고 반영해야 한다.”(30·경기·기타)
반면 전문가들은 경제적 불평등을 민주주의 최대 걸림돌로 지적했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는 유사 파시즘적 상황은 결국 경제 불평등의 심화가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박탈감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다수 사람들의 고통은 임계치에 왔고 분단이라는 특수성, 중국과 미국의 부상 등의 문제로 한반도의 상황은 바야흐로 일촉즉발의 위기라 할 수 있다.”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은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할수록 국민의 민주적 참여 의지는 퇴보한다”고 말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는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으로 재벌을 지목했다. 그는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삼성을 위시한 재벌들이 대통령 최측근을 관리하면서 대가성이 명백한 자금을 지원하고 동시에 자신들에게 필요한 인허가와 법률 제정 등을 챙긴 것”이라며 “(지금까지) 여야를 막론하고 주류 정당들은 사실상 다 재벌의 의제를 실현해왔고 그 과정에서 각종 (경제·사회적) 격차들이 악화일로로 향했다”고 말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도 “재벌독재로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의 정글이 됐다”고 동의했다.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은 “광장의 촛불이 여야가 서로 경쟁하면서도 대의제 민주주의와 친자본 경제 질서를 보존하기 위해 협력해왔다는 걸 꿰뚫어봤다”며 “이제 새로운 사회·경제 구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4·19세대의 부끄러움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철학자 김만권씨 기고 광장 이후 어디로 갈 것인가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 / 불도 없는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 몇 개의 마른 잎 (…)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시인 김광규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혁명 이후 새로운 삶을 두고 결론을 내지 못한 4·19 세대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어쩌면 우리에게 혁명은 늘 그런 것이었다. 변화를 원하는 분노한 사람들의 허망한 마무리. 혁명이 끝난 자리에 경멸했던 정치엘리트들이 다시 돌아와 제자리를 찾고,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이는 일의 반복.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이끌어낸 ‘시민들의 광장혁명.’ 그런데 가는 곳마다 들리는 우려의 목소리는 시절이 지나도 변함이 없다. 광장 이후,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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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 정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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