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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김종철·최성현 옮김/녹색평론사 펴냄(2011)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다’는 의식은 거의 상식에 가까워서 어떤 의심도 질문도 용납하지 않는다. 어릴 적 경험한 가난의 기억이 생생할수록 오늘날의 풍요는 대비돼 빛난다. 그런데 그 ‘좋아졌음’이 자신이 모르는 타자의 저임금과 이주노동자들의 가난을, 나아가 대한민국 밖의 다른 나라의 빈곤을 토대로 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거기에다 발달한 기술문명은 우리의 의식을 얼마간 마비시켜 삶의 진실을 직접적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게도 한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지금의 상대적 풍요가 미래의 부를 미리 끌어다 쓰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많이 달라진다. 식량이나 의약품 혹은 기초생활필수품이 부족했던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기초생활필수품마저 그것의 재료를 생산하는 누군가를 수탈하지 않고는 현재 같은 과잉생산이 있을 수 없다는 근본원리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한동안 북한에서도 그랬지만 아직도 절대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류의 깊은 상처임과 동시에 숙제이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는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경제발전”에서 찾는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발전”이란 말의 시초는 1949년 1월20일에 있었던 미국 대통령 트루먼의 취임연설이었다고 한다. 트루먼은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바로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발전” 정책은 어떤 사회제도나 생명체에 내재한 가능성 혹은 잠재력을 밖으로 펼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문화나 경제나 삶의 방식이나 일하는 방식 등”을 경제성장의 땔감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간의 노동과 삶의 양식을 파괴하여 오로지 교환가치 체제에 종속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경제는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성장은 유한한 지구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수탈함으로써 가능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제로성장”을 기반으로 한 “대항발전” 개념이다. “대항발전”을 이 지면에서 요약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아무튼 그것은 인간이 본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경제성장을 위한 기술문명에 의지하지 않은 채 “기쁘게 지낼 수 있는 능력”의 회복을 지향한다. 즉 “대항발전”은 경제적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개념이며 조금 더 직접적으로는 실천적 개념인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아래로부터 압력이 없으면” 정부 시책이 “바뀔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한 데서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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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관/시인, 도서출판 삶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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