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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3.24 20:19 수정 : 2016.12.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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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
염무웅 지음/삶창 펴냄(2015)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두 번째 산문집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는 첫 번째 산문집 <자유의 역설>(삶창)의 연장선상에 있다. 염무웅은 그의 본업인 문학비평 외에 현실에 대한 준열한 물음을 그쳐본 적이 없는데, 그 성과를 모아놓은 것이 바로 이 두 권의 산문집인 것이다. 첫 번째 산문집에서도 그랬지만 두 번째 산문집에 실린 대부분의 글들의 키워드는 분단, 자유, 평화, 민주주의, 탈핵으로 집약된다. 다만 좀 다른 점은 ‘다산포럼’에 연재한 다수의 독서 칼럼이 두 번째 산문집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염무웅의 독서칼럼은 여느 서평과는 다른데, 그것은 저자의 독서 자체가 실천적 함의를 갖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염무웅의 독서는 현학적인 지적 욕구를 위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걸음을 위한 현존의 요구>에 실린 독서칼럼은 저자가 현실에서 느낀 여러 문제점을 의식적으로 탐구하기 위한 것만 같아 보인다. 여기서 그 책들의 목록을 살피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한마디로 저자의 독서칼럼은 책과 책 사이를 저자의 문제의식으로 메운 독립적인 글이다.

한편으로 그가 문학도인 게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과 그 극복 과정을 기록한 <운명의 날>과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강타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폐허에서 살아가는 일본인 노학자의 산문집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를 읽고 쓴 독후감 ‘내면으로 전진하자!’라는 글에 나타나 있다.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state)적 차원의 자세와 ‘공동체로서의 나라’(country)를 사유하는 한 개인의 품위를 언급하면서, 재난 속에서도 가능한 “참된 삶을 다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읽어내는 안목은 저자가 문학도여서 갖게 된 감수성이 크게 작용해서일 것이다.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바로 묵시록적인 현실에 대한 저자의 진단이다. 사실 이 책을 표상하는 키워드인 자유나 평화, 민주주의는 기실 그것들의 위기를 반영하는 것인데 저자의 미덕은 어떤 위기 상황에 대해 섣부른 진단과 처방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가 다룬 적지 않은 책들이 일종의 역사서인 것은, 과거에 대한 기록을 통해 현재를 더 깊게 사유하고자 하는 의지 때문일 것이다.(이 책의 뒤에 나온 문학비평집의 제목이 <살아있는 과거>인 것은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머리말 격인 ‘나날의 어둠을 견디며’에서 밝힌 다음과 같은 대목은 그가 얼마나 현실에 대해 겸허한 자세와 진중한 발걸음을 가졌는지 음미할 만하다. “이 세계의 타락과 불의를 보고 그것들을 향해 부단히 시비 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미래에 대한 큰 확신 때문이 아니라 현존의 작은 요구들 때문이다.” 나는 이 단락이 리얼리스트 염무웅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심지어 “박근혜 시대 5년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현명하게 적응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박근혜 시대에 적응하기’)고까지도 말한다.

황규관/시인, 도서출판 삶창 대표
나는 우리 시대가 염무웅 같은 리얼리스트에게 아직 배울 것이 많다고 보는 입장이다. 염무웅의 냉철함은 냉혹함이 아니라 ‘사물을 바로 보려는’ 의지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의 “반걸음”을 향한 열망은 우리의 현실을 꿰뚫어본 이성의 전략이기도 한 것이다.

황규관/시인, 도서출판 삶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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