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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6.23 22:05 수정 : 2016.12.21 15:51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세계인권사상사
미셸린 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도서출판 길(2005)

한 인권운동가의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다.” 부당한 상황에 처한 이들은 너무나 많고 그는 평생 쉴 틈이 없었다. ‘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닌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상식적인 얘기다. 인권은 이렇게 직설적이고 명쾌하게 정의되지만, 현실에서는 그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억울함과 부당함의 목록만큼이나 많은 인권의 내용들이 있다.

인권의 내용이 복잡다단하기에, 인권의 현장에서는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기도 한다. 갈등은 누군가의 목숨을 앗을 상황에까지 치달을 정도로 첨예하고 격렬하다. 안전하게 살 집을 가질 권리인 주거권,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인 건강권의 예에서 보듯,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한 권리들은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인권으로 취급받지 못하곤 한다. 이는 그것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재화 및 서비스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또한 테러방지법이나 민간인 사찰의 명분인 ‘국가’ 안보 역시 인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혐오발언 피해자의 인권 또한 표현의 자유라는 또 다른 권리 주장 앞에서 힘을 잃고 만다. 국가와 시장과 개인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내세워 언제라도 손쉽게 타인의 존엄을 폐기해버린다. 그렇기에 인권의 목록과 우선순위는 확정되어 있지 않으며, 지금 목록에 들어 있는 권리라 할지라도 불시에 밀려날 위험은 상존한다. 그리고 그런 잠재적 위기는 소수자의 몫이다.

우리가 무심히 추상적인 수준에서만 동의해왔던 인권의 가치와 내용은 결코 절대적이고 단일하지 않다. 천부인권이라지만, 인권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번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인권은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쉴 수 없었다. 조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인권학의 여러 필독서들을 써냈던 미셸린 이샤이는 <세계인권사상사>에서 이 사실을 역사를 통해 보여준다.

저 멀리 함무라비 법전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권의 개념과 내용은 끊임없이 바뀌어왔다. 근대 이전, 계몽주의, 산업혁명, 양차 대전과 냉전, 지구화 시대 등등 시기에 따라 새로운 인권 내용이 추가되거나 우위를 점한 인권의 요소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각종 선언과 법안이 제출되었다. 여기까지 보면 인권의 역사는 성취와 실현의 한길만을 달려온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진퇴를 반복한 역사였다. 간신히 내디딘 한 걸음은 반동으로 대체되기 일쑤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느 시대에나 당대의 ‘보편인권’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집단들이 존재했다. 지금 여기서 여성이, 장애인이, 성소수자가, 저소득층이 여전히 그러하듯이. 하지만 한계와 모순을 드러냈음에도 인권의 역사가 전진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배제되고 차별받았던 이들의 저항과 그에 대한 연대 덕분이었다. 이샤이에 따르면 인권은 국민국가,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인간 억압에 대한 자구책으로서 발생한 특수한 형태의 ‘저항담론’이다. 인권은 가진 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서가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이들의 훼손된 존엄을 복구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지금은 아닐지라도 나이가 들어서, 병들어서, 소득이 줄어서, 여성이라서 등등 우리는 언제라도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계인권사상사> 첫머리에 나오는 일성은 이렇다. “이 책은 억압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사서이다.”

천정은 도서출판 길 편집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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