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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9.22 19:30 수정 : 2016.12.21 15:48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페미니즘의 도전(개정증보판)
정희진 지음/교양인(2013)

‘여배우’, ‘여류 작가’, ‘처녀작’, ‘유관순 누나’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을 기준으로 삼은 명칭들이다. ‘남배우’나 ‘남류 작가’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없다. 국민, 노동자, 시민이라는 보편적 개념도 중립적이지 않다. 이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남성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여성이 이런 범주에 들어가려면 때로 ‘여성 노동자’처럼 덧붙는 말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남성’은 사람이고 ‘여성’은 여성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국 페미니즘 분야의 대표 도서로 꼽히는 <페미니즘의 도전>은 ‘상식’과 ‘통념’으로 뿌리내린 성차별 의식과 현상을 낱낱이 드러내고, 더 나아가 ‘절망 사회’의 대안적 인식론으로서 여성주의(feminism)의 의미를 쉬운 언어로 풀어낸 책이다. 저자는 가정폭력에서 매매춘, 성과 섹스의 관계, 군사주의 문화까지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는 성별(gender)에 관련된 쟁점을 여성의 언어로 재해석한다.

저자는 우리의 앎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앎이란 무엇인가? 어떤 지식은 아는 것이 힘이지만 어떤 지식은 모르는 게 약이다. 지식이 특정한 사회의 가치 체계에 따라 위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이제까지 여성주의는 몰라도 되는 것, 모르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지식이었다. 지금도 여성주의를 아는 것만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흔하다.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은 앎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앎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은 늘 ‘내가 아는 것을 믿을 것인가, 남(성)이 아는 것을 믿어야 하나’라는 문제로 고통받는다. 심지어 여성의 경험과 여성주의에 관한 앎도 남성이 ‘가르치고’ ‘지배’하려 한다. 여성운동을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고학력) (중산층)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평하거나, ‘진정한/올바른 페미니즘’의 진위를 거침없이 판단하는 남성의 사고 밑바닥에는 남성만이 보편적 인간이며 절대적 중심이기 때문에 ‘여성에 대해서는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세상에 대해 지금까지와 다르게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이 책을 만들면서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는 문장을 처음 접하고 느꼈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새로운 언어는 여성과 남성 모두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질문하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여성주의는 다양한 타자들과의 소통, 사회적 모순과 성차별 관계에 주목한다. 때문에 여성주의는 그 어느 정치학보다도 사회적 차별에 매우 민감하며, 다양한 피억압자들에게 관심을 갖는 연대와 제휴의 정치이다.”

이승희 교양인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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