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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20 20:16 수정 : 2016.12.21 15:47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사는 게 뭐라고 -시크한 독거 작가의 일상 철학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마음산책(2015)

미아 한센-러브 감독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이야기는 주인공 나탈리(이자벨 위페르)의 평온하던 일상에 여러 균열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영혼의 동반자인 줄 알았던 남편은 새로운 사랑을 만났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요양원에 모셨던 엄마는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 되뇐다. 비로소 온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물론 다시 혼자가 되어 삶을 꾸려가는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다. 단순히 그녀가 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나이 든 여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이전에 집필한 책들은 퇴물 취급을 받는다. 그녀가 물러선 중심에 서서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청년들에게 이미 예전에 다 해본 것이라고 냉소하지 않고 마냥 응원을 보낼 수는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복잡한 감정들을 훌훌 털고 다가오는 삶을 향해 기꺼이 몸을 던진다.

나탈리의 모습에서 ‘사노 요코’가 겹쳐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100만 번 산 고양이> <내 모자>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는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를 통해 ‘나이 든 여자’로서 홀로 살아가는 일상을 유쾌하게 펼쳐나간다. 예순이 훌쩍 넘은 그녀에게 이미 많은 것들이 예전 같지 않다. 요의가 있어 화장실로 달려가면 졸졸졸 정말 ‘기나긴’ 오줌이 끊임없이도 나온다. 조금만 무리하면 다음 날 근육통에 시달린다. 치매가 의심될 정도로 기억도 깜빡깜빡해서 냉장고 속에 커피 잔을 넣어두는가 하면, 이미 갖고 있는 물건인 줄도 모르고 친구에게 선물해달라고 졸랐다가 민망해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연의 섭리인 노화 과정을 어찌할 수 있을까. 그저 늙으면 다들 이렇게 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불평이나 할 수밖에.

책 속의 ‘나이 든 여자’들은 하나같이 유쾌하고 활기 넘친다. 40대 중반부터 희귀 난치병에 걸린 친구 노노코는 약이 없으면 몸에 마비가 올 정도인데도 성질머리가 장난이 아니다. 왜 그렇게 성질을 부리냐고 물으면 그녀는 당당히 말한다. 내가 못된 게 아니라, 병이 못된 거라고. 보험회사에 다니며 혼자 사는 사촌 모모 언니는 정년의 그날을 기다리며 달력에 가위표를 친다. 사노 요코 본인은 뒤늦게 한국 드라마와 잘생긴 배우들에 푹 빠져 대형 텔레비전까지 마련했다. 예순여덟 살 먹은 여자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녀는 전혀 외롭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살날을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을 생각하고 싶다고 한다. 유방암에 걸려 투병하면서도 그녀는 오히려 “암은 덤 같은 것”이라고 여긴다. 2년 정도 더 살 수 있다는 말에 오히려 우울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며, 그녀는 영화 속 나탈리보다 더 화끈하게 다가오는 삶에 자신을 던진다. 노후 대비용으로 모아뒀던 돈으로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바로 시원하게 재규어 한 대를 뽑는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는가’가 화두인 요즘, 나는 이 책만큼 ‘어떻게 남은 삶의 본전을 제대로 찾을 것인가’를 속 시원히 일러주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다.

박혜미 알마 편집부 과장

※이번주부터 박혜미 알마 편집부 과장이 집필합니다. 4주 간격으로 세 권의 책을 소개하되, 그중 한 권은 자사 책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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